허재완 < 중앙대 교수 > 경상북도 도청은 경북의 행정구역이 아닌 대구 시내에 있다. 대구가 광역시로 승격하여 경상북도와 분리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도청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경북 내 도시들간의 도청유치 경쟁이 워낙 치열해 어느 도지사도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결정 후에 부딪혀야 할 부작용이 너무 커서 이른바 '무책이 상책'이라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충청남도의 경우도 동일하다. 한 자치단체의 청사를 지역 내에 이전하는 것도 이처럼 어려움이 많거늘 170여개의 중앙정부산하 공공기관을 일시에 지방으로 이전하고자 할 경우 그 부작용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수많은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들이 그들의 정치 생명을 공공기관의 유치에 걸고 있다.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지역의 분위기가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균형발전은 참여정부의 최우선국정목표가 되어 있고 공공기관 이전은 행정중심복합도시와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정책수단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의 여건은 공공기관이전이 우리사회의 지역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공공기관이전에 관한 정부의 최종안이 제시될 경우 만족하는 지역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지역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전 대상공공기관 중 모든 지역들이 원하는 파급효과가 큰 공공기관은 몇 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유치하지 못한 지역들은 정부 결정이 편파적이고 특정지역을 배려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을 완화하려던 공공기관 이전정책이 역설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은 덮지 못한 채 오히려 비수도권 내 지역 간의 갈등만 증폭시키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경영개선이 가장 필요한 곳의 하나로 공공기관을 꼽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방식대로 공공기관 이전이 조급하게 추진될 경우 국가적 효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방만한 조직과 불투명한 운영 등으로 일부 공공기관은 국민들에게 복마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공공기관들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하여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안하고 있다. 구조조정은커녕 오히려 공공기관의 비효율성을 묵인하거나 더욱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공공기관이전이 지역갈등의 심화, 국가경쟁력의 훼손이라는 부작용 없이 지역균형개발이라는 원래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추진방법을 재검토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두 가지의 원칙을 제안 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공공기관의 선(先) 경영개선, 후(後) 지방이전이다. 공공기관이 일단 지방으로 특히 낙후지역으로 이전하게 되면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은 불가능해진다. 이전 공공기관이 해당 지역의 가장 주요한 고용기반으로 자리 잡게 되면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은 곧바로 해당 지역의 경제기반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결사반대하게 된다. 공공기관들도 그러한 지역분위기에 편승하여 구조조정을 피하고자 노력하게 되고 구조조정문제는 곧바로 지역의 정치적 이슈로 비화하게 된다. 공공기관의 숫자가 많고 고용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한 수도권에 공공기관이 소재해 있을 때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지방이전 전에(혹은 동시에)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두 번째는 중앙정부의 역할전환이다. 이해 당사자가 아닌 조정자의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공공기관 이전작업에 있어서 중앙정부가 이전 대상기관의 선정부터 지역적 배분까지 모든 것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전작업을 신속하고 일관성 있게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는 너무 큰 부작용을 유발한다. 정부가 이해관계 당사자가 됨으로서 이전작업에 따른 모든 불만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고 이전과정에서 발생할 지역간 갈등 및 지역과 공공기관 간 갈등을 중재할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하기가 힘들어 진다. 따라서 중앙정부는 공공기관이전을 위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이전의 원칙, 이전 시한, 이전 시 지원방안 등) 나머지는 자치단체와 이전 대상 공공기관들의 상호협상에 의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유치에 실패한 자치단체라 할지라도 누구를 원망할 수 없다. 다만 낙후지역이 지나치게 불리해 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가 일정수준 이하의 낙후지역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에 대하여는 보다 큰 지원혜택을 제시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