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예찬'은 읽을수록 그 맛이 새롭다. "어린이 나라에 세 가지 예술이 있다.어린이들은 아무리 엄격한 현실이라도 그 것에 찬란한 미와 흥미를 더해 예술화된 이야기로 보고, 어린이들은 또 실제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 왕자도 되고 나비도 되면서 훌륭히 경험하고, 어린이는 본 것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것이다." 80여년 전 유교적인 인습에 꽉 젖어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시절, 게다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짓눌리고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기에 소파의 어린이 사랑은 그야말로 지극한 것이었다. 어린이가 '희망'이라며, 어린이를 얕보는 투의 '아이'라는 말 대신 높임의 뜻이 담긴 '어린이'라 부르자고 주창한 사람도 다름아닌 소파였다. 우리나라에서의 어린이에 대한 권리보호는 국제사회보다 앞섰다. 1923년 5월1일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처음 열린 '어린이 날'행사에는 1천여명이나 모였고, 그들이 든 깃발에는 '어린이 해방'이라는 붉은 글씨의 구호가 선명했다. 국제연맹은 이듬해 '아동권리선언'을 내놓았고 미국은 1930년에야 '어린이헌장'을 발표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 날이 찾아왔다. 놀이동산과 고궁, 박물관 등은 부모와 함께 나들이 온 어린이들로 하루종일 북적댈 것이다. 이 날은 어린이들이 하늘처럼 섬김을 받으면서 갖은 응석을 다 부릴 수 있는 특권의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어린이들은 매일 매일 분에 넘치는 보호를 받고 학과 외에 수많은 교육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어린이 날 무용론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문제는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다. 내 아이를 최고로 만들려는 어른들의 욕망이 되레 어린이들을 고독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사랑의 결핍은 더 해지는 것 같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최근 조사에서도 어린이들이 부모로부터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사랑한다'였다고 하니 부모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어린이 헌장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