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록 < 법무법인 율촌 대표 변호사 > 지금 대학 2학년생들이 졸업하게 되는 2008년에 첫 신입생을 선발할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설립 준비가 한창이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공개한 로스쿨 도입방안에 따르면 각 로스쿨의 학년당 입학정원은 1백50명 이하가 된다. 몇개의 로스쿨이 설치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연간 배출될 변호사 수를 현재 수준인 1천명선으로 정하고 졸업자의 80~90%가 합격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감안하면 로스쿨의 총정원은 1천2백명선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로스쿨 유치를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대학들은 2천5백명선이 적절한 정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로스쿨과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논의는 배출될 법조인의 숫자와 그를 기초로 한 총정원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법률시장 규모에 비춰 법조인의 숫자가 법률서비스의 질을 좌우한다는 생각에 기초하지만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술책이라는 지적도 있는 게 사실이다. 숫자에 강하게 집착하는 것은 로스쿨 졸업생들이 국내에서 '법률가'로만 활동할 것을 전제로 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일본을 예로 들며 로스쿨 제도가 실패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로스쿨 정원 논의에서 벗어나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로스쿨은 법률 교육을 통해 사회 각계에 우수한 인재를 공급한다는 철학에서 시작돼야 한다. 우리 사회를 법과 규칙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드는 초석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임할 때다. 졸업생들이 활동할 무대도 국내에만 국한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미국 로스쿨 졸업생들은 법률분야뿐 아니라 금융 언론 등 비법률 분야에도 대거 진출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로펌들은 싱가포르나 홍콩 지사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을 관할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네들이 아시아 모든 나라의 법률과 제도에 정통해서가 아니다. 바로 세계공용어인 영어의 힘과 오랜 국제거래의 경험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현지의 로펌들과 협동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다 소화해낸다. 우리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로스쿨을 시작해야 한다. 로스쿨은 글로벌 시장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이미 세계시장 곳곳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을 지원하는 일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졸업생이 필요할 것인가에만 골몰하지 말고 이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 먼저 로스쿨의 교육 내용이 다양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현재 자연계 학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수진의 활동과 운영 프로그램의 내용이 로스쿨 졸업생의 위상과 장래를 좌우하게 된다. 로스쿨은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서로 피나는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제한된 수의 로스쿨을 인가하고 한정된 인원을 선발, 비슷비슷한 내용을 가르친다면 굳이 로스쿨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 학생 선발절차도 지금 법과대학의 획일화된 선발 기준에서 벗어나 특색있는 선발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학생 선발에 관해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로스쿨 입학시험이 또 다른 형태의 사법시험이 되고, 그 시험을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을 다 바치는 현재와 같은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각 로스쿨은 나름대로의 비전에 맞춰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 사회 곳곳에 필요한 인재로 길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로스쿨에 전적인 재량권을 부여해 선발에서부터 경쟁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선발방식의 자율화는 자연스레 졸업생 성향의 차별화로 이어질 것이다.미국의 경우 어떤 로스쿨은 학술 분야에서 탁월하고 또 다른 로스쿨은 공직 진출이 많다. 또한 환경법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학교가 있고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학교도 있다. 끝으로 국제화시대에 맞춰 국제대학원이나 경영대학처럼 외국의 유학생들을 많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저절로 글로벌 마인드가 생기고 국제적인 인맥이 형성될 것이다. 우리가 도입하려는 로스쿨이 자칫 갓쓰고 자전거 타는 모양이 되지 않도록 다같이 걱정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