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경영하는데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일 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대한통운에 말단 직원으로 입사해 현재는 법정관리상태인 이 회사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곽영욱(65) 사장.


그는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버티고 서 있는 고목(古木) 처럼 대한통운이라는 회사를 떠나 본 적이 없다.


회사가 부도가 난 후 사장이 됐다가 결국 법정관리를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경우라면 경질됐을 법한데도 극히 이례적으로 법정관리인으로 임명된 그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의해 유례없이 4년 연속 우수관리인으로 선정된 곽 사장은 기자에게 자신이 실천하는 '영혼경영'에 대해 설명한다.


"법인체도 생명력이 있는 것인데 기업을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끌고 나가 보자는 생각에서 만든 개념입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10년간 직원을 한 사람도 해고하지 않고도 가고 있지 않느냐, 또 일부 외국기업에서는 장기근속 직원들의 장례까지 치러준다고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부도가 난 대한통운이 정리기업이 된 후 경영이 정상화되고 매년 연속 이익이 증가해온 것은 단순한 '온정주의'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인사제도에 대수술을 가했습니다. 그 전에는 전국의 주요 지점장을 본사에서 내보냈습니다. 심지어 탁구 선수도 요직 지점장으로 갔지요. 사장.회장에게 잘 보인 사람들이죠. 사기가 죽어서 직원들이 일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전 지점장을 연고지 배치 원칙을 정해 현지 간부 중에서 뽑아 발령냈습니다. 그랬더니 직원들이 신이 나서 일을 하기 시작하더라구요."


"인사평가위원 5명에게 맡겨 지점장을 결정하고는 새 지점장들에게는 권한과 동시에 책임을 주었습니다. 영업실적이 좋은 곳에는 성과급을 줬더니 이 사람들이 나중에는 죽는 시늉까지 하더군요."


직원과 고객의 영혼까지 사로잡는 회사 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을 실천에 옮긴 결과다.


스피드경영도 그에게는 큰 과제였다.


"결재 단계도 문제였습니다. 무려 12단계의 결재과정을 거쳐야 결론이 나고 그 사이에 경쟁에서는 밀렸습니다."


곽 사장은 그래서 결재단계를 팀장-본부장-사장 등 3단계로 확 줄였다.


속도를 중시하는 운송.하역 업종에서 스피드경영이란 큰 힘을 발휘했다.


현장에서 필요한 장비 등이 적기에 공급됐으며 돈이 돌았다.


현대 기업사회에서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먹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스피드경영의 개혁대상은 결재단계 만이 아니었다.


정보의 사내 확산이 최대한 빨리 이뤄지도록 했다.


아침에 간부회의 내용을 녹취해 주요 사항을 곧바로 사내전산망에 띄워 어디에서든지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게 한 것이다.


"과거에는 사내 정보를 일부 사람들이 독점하다 보니까 직원들이 아침에 사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하루 종일 그거 파악하느라 바빴어요. 정보를 가진 사람들은 폼을 잡고...그래서 기획실장에게 제가 주재하는 오전 회의의 내용을 사내전산망을 통해 바로 알리라고 했지요. 리비아나 미국 등 해외사무소에서도 바로바로 아침회의 내용을 알게 되니까 거기에 맞춰서 일하면 되는거에요."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곽 사장은 직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과거에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높은 벽이 있었는데 이제는 벽이 허물어져 버렸어요.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교류를 하다 보니 벽이 있을 이유가 없지요. 상호 신뢰하면서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


이러다 보니까 대한통운의 노사관계는 다른 기업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지난해 단체협약을 통해 봉급을 5.2% 올려준다고 했다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못 올려줬습니다. 노조에서 한 마디도 얘기 안했습니다. 신뢰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올해는 5% 인상했습니다. 지금 몇년 째 노동부로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 표창을 받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을 자르는 일에 대해 곽 사장은 고개를 젓는다.


"더불어 산다고 할 때 직원들이 하는거지 잘린다는 위협 느끼면 일 못합니다. 우리는 인력 구조조정 대신 재무 구조조정을 합니다. 물론 감사에 걸린 사람, 뭔가 잘못한 사람 잘라내기도 하지만 인력 구조조정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곽 사장이 요즘 가장 신경쓰는 일은 리비아 대수로 프로젝트의 안정적인 공사진척이다.


올초 111억달러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1, 2차 공사의 노후관 보수, 지체상금과 관련된 리비아 정부와의 협상을 마무리짓고 최종 공사완공증명서를 받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요즘 매일 오후 5시에 리비아 대수로공사 진척상황 점검을 합니다. 2차공사의 지체상금 문제는 해결돼 오는 6월까지 예비 준공검열을 받게 될 예정입니다. 노후관 보수도 잘 하면 그간의 클레임도 없는 것으로 할 것이기 때문에 내년 6월까지는 1, 2차 공사의 완공증명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곽 사장은 특히 리비아 대수로공사와 관련된 협상의 결실이 맺어진 공을 법원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차한성 수석부장판사가 `리비아 리스크'를 해결하려는 대한통운의 노력을 크게 뒷받침해주었다는 것이다.


대수로공사와 관련된 반가운 소식 하나는 감독청인 리비아 대수로청이 대한통운의 참여폭을 더욱 ??혀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


3차, 4차, 5차의 대수로공사는 대한통운이 25%의 지분을 갖고 참여하는 리비아의 ANC 회사를 통해 하고 있는데 대수로청은 25% 지분율을 50%로 확대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신뢰감의 표시다.


"지분율의 확대는 서울중앙지법의 승인사항에 속하기 때문에 법원측과 협의해 모든 것을 확정할 계획입니다."


곽 사장에게는 '사치스러운' 고민이 있다.


지난해에도 1조1천190억원의 매출에 612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돈은 쌓이고 있어 은행빚을 갚으려 하는데 채권은행이 돈을 갚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채권은행은 연 8.15%의 이자를 받고 있는데 요즘 그 정도의 금리로 꼬박꼬박 이자를 물고 있는 기업이 흔치 않기 때문에 돈을 그대로 쓰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위 정리기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재투자도 하고 있다는 것이 곽 사장의 말이다.


대한통운은 법정관리가 결정된 이후 최근 수년간 흑자규모를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정리기업이면서도 정리기업 답지 않게 대한통운을 곽 사장이 꾸려나갈 수 있는 배경에는 그의 고목론도 한 몫을 한다.


"1964년에 대한통운에 입사,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을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고목 처럼 한군데 있고 다른 직장 기웃거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한통운에 있는 지난 41년간 워낙 이 부서 저 부서, 이 지점 저 지점에서 일하다 보니까 직원들이 모두 곽 사장의 성격을 알고 따라오더라는 것이다.


타고난 배짱과 과단성이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부도난 회사인데 이런 저런 시도를 과감하게 해봐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과단성이 있었기에 결재단계를 대폭 축소하고 과거 지점에서 본사로 봉투가 오는 것을 하루 아침에 차단하는 `인사투명', `금전투명'의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이런 투명경영 속에 법정관리 중 본사 사옥을 사들이며 사세를 확장하고 금탑산업훈장과 노사문화 우수기업상 등 많은 상을 받는 진귀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곽 사장은 "그간 대한통운이 이룩한 것의 99%는 직원들 덕택이었고 제가 한 일은 1%에 불과합니다"라며 겸손함을 잊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2002년부터 매년 정리기업 중 경영성과가 특히 좋은 회사의 관리인을 선정해 특별보수를 지급하고 있는데 첫 해부터 4년 연속 우수관리인 표창을 받은 사람은 곽 사장이 유일하다.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기자 kangfa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