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전보인사 문제로 요즘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회사 노조는 회사일을 하지 않고 노조일만 하는 전임자를 무려 77명이나 두고 있다.


조합원이 총5천4백61명인 점을 감안할 때 조합원 71명당 1명이 전임자다.


우리나라 전체 노조 평균(1백79명당 1명)보다 두배 이상 많은 숫자다.


특히 공기업 노조에 대한 정부 규정상의 적정 전임자수와 비교해보면 말문이 막힐 정도이다.


기획예산처는 공기업 노조의 전임자 수를 조합원 1천명당 1명에,5백명 초과 때마다 1명씩 추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의 전임자는 11명이 적정하다.


하지만 이곳 노조는 적정인원의 7배가 넘는 전임자를 두고 있다.


물론 여느 노조처럼 임금을 회사측으부터 지급받고 있다.


공단측에 따르면 이들 전임자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는 연간 27억원.노조 업무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해마다 국민들이 내는 기금 중 20억원 이상이 지출되고 있는 것이다.


"전임자를 줄이려 해도 노조의 저항이 워낙 거센 데다 임기(3년) 중에 마찰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고 보려는'낙하산'이사장들의 성향 때문에 사실상 손도 못 대는 상황"이라고 공단 관계자는 전했다.


전임자는 공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간 대기업 역시 공기업만큼 심하진 않지만 수가 과다하긴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경우 전임자는 90명.상급단체에 파견된 전임자까지 포함하면 97명에 이른다.


여기에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회사 일을 하지 않는 노사공동위원,교육위원,사업부 대표 등 임시상근자 1백28명까지 합치면 실질적인 전임자는 2백24명으로 불어난다.


전체 조합원을 4만1천2백여명으로 잡을 경우 조합원 1백81명당 1명꼴이다.


현업을 떠나 회사측과 협상 때마다 최선봉에 나서는 이들 '공격수들'에게는 통상급 외에 월 75시간의 연장근로수당까지 지급된다.


1인당 연평균 5천92만원,총 1백13억5천만원이 회사업무를 하지않는 전임자들에게 나간다.


전임자의 역할은 주로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회사측과의 협상 또는 파업 전략을 짜는 것.노사갈등이 심한 사업장에선 파업 전략을 세우는 데 전임자들이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시키기 위해 늘 '일'을 만든다.


일부 사업장에선 대의원들이 전임자 행세를 하며 업무 분위기를 어지럽히고 있다.


재계가 전임자를 노사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경총의 이동응 상무는 "전임자들은 하루종일 노조 사무실에 앉아서 사용자를 괴롭힐 생각만 한다"며 "회사가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적진에 탄약을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한국 노동조합의 전임자 수는 선진국에 비해 엄청나게 많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유급전임자 1인당 조합원수는 우리나라가 1백66∼1백79명인 반면 일본은 5백∼6백명,미국은 8백∼1천명,유럽은 1천5백명이다.


전임자가 많은 이유는 기업별 노조체제라는 특성도 있지만 노조의 파워가 워낙 막강한 탓이다.


회사는 노조의 힘에 밀려 유급 전임자를 늘려줘 왔으며 그게 관행처럼 굳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노조 전임자가 크게 늘어감에 따라 이는 회사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노조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임자의 임금을 회사에 의존하는 것은 마침내 노조의 자주성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노무담당 임원은 "노조 간부를 했던 조합원들은 막말로 놀고먹는 데 익숙해져 임기가 끝나도 현업에 복귀하기보다는 노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월급받을 궁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노사관련법 등의 개정에 따라 오는 2007년부터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회사측의 임금지급이 금지된다.


하지만 노사합의에 의해 지급이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어 전임자 임금문제는 자칫 노사분쟁의 새로운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시행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무력화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목숨을 걸고 막겠다"고 밝혀 이 문제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이에 비해 재계는 전임자 임금문제는 법 개정 취지에 맞게 실질적인 지급금지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