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GM위기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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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 딜로이트 컨설팅 파트너 >
'제너럴모터스(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1백년 역사를 지닌 GM은 미국 그 자체였다.
그러나 전성기 때 미국시장 점유율 57%를 자랑하며 세계 자동차산업 부동의 1위로 군림했던 GM은 지난해 미국시장 점유율이 27.3%로 줄고 실적 악화로 회사채 신용등급이 정크본드 직전 수준으로 떨어지는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거대기업 GM 몰락의 핵심 원인이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인구 고령화라는 점에서 GM의 오늘은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미래일 수도 있다.
GM은 1백10만명에 이르는 종업원 및 퇴직자와 그 가족에게 의료보험료를 전액 보조하고 있으며 지급액은 지난해 52억달러,올해는 6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또 퇴직자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 부채는 무려 6백30억달러로 GM 시가총액의 4배를 웃돈다. GM은 2003년 연금 지급을 위해 1백7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한 적도 있다.
퇴직자의 연금과 의료보험료 지급을 위해 돈을 빌리고 있는 것이다. GM이 생산하는 자동차 한 대당 2천2백달러에 달하는 의료보험료와 연금 비용은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판매 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할인 판매를 하는 악순환이 GM 위기의 본질적 측면이다.
이렇듯 GM을 옥죄는 복지제도의 역사는 1936년 전설적 동맹파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자동차산업 대호황기였던 1940~50년대를 거치면서 퇴직 후의 생활과 의료까지 보장하는 제도의 골격이 완성되었고 GM은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가 아니라 '제너러스 모터스(Generous Motors)'라고 불릴 정도로 종업원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다.
당시 성장산업인 자동차산업에서 부동의 1위를 굳힌 GM은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무엇보다 미국인의 평균 수명이 1900년대 초 50세 전후에서 최근에는 77세까지 연장된 것이다.
그 결과 퇴직 종업원의 생존 기간이 길어지면서 연금 지급액은 급증했고 의료기술 발달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고령화의 유탄을 맞은 GM은 미래가 아닌 과거를 지탱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업이 돼버렸고 18만명의 종업원들도 자신과 회사의 미래보다는 퇴직자를 위해 일하는 셈이 되었다. 실제로 회사가 부담하는 연금과 의료보험료 혜택의 3분의 2는 퇴직자들에게 돌아간다.
GM의 퇴직자는 현직 종업원의 2.5배에 이르고 일부 퇴직자들은 근무 당시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또한 미국시장 내 외국 자동차 점유율은 1980년대 중반 24%에서 현재 40%로 높아져 GM을 비롯한 이른바 '빅3'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듯 세상은 바뀌었으나 퇴직자 생활보장이라는 과거 유산은 그대로인 현실과 제도간 괴리가 GM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GM의 위기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히트제품 개발로 타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문제이며 긴 호흡으로 설계되어야 할 복지제도가 좁은 단견에 근거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곤경에 빠진 GM은 곧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2026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일부 집단의 정치적 구호에 떠밀려 경제적 합리성이 결여된 복지정책을 제도화한다면 이는 다음 세대가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앞세대의 과거를 위해 살아가야 함을 의미하며 이러한 사회가 활력을 유지해 나가기는 어렵다.
미국 카네기재단은 미래세계란 계급 종교가 개입된 '문명의 충돌'보다 연금 의료보험을 놓고 갈등하는 '세대간 충돌'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GM의 오늘은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조만간 닥칠 수도 있는 위기라는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