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지난해 '임금 상승 없는 근로시간 연장'이라는 새로운 노사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 등 서유럽 언론들은 수차례나 독일의 기업 구조조정과 노사 협상을 소개하며 "많은 휴가와 여가를 즐기고 짧게 일하던 독일 사회의 신화는 끝났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독일의 폭스바겐 노사는 오는 2011년까지 노조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28개월간 임금을 동결하고,신규 고용에 대해 임금을 감축키로 합의했다. 최근 독일계 보쉬사 자동차 부품 공장 노조도 1시간 연장 근무와 급여 동결을 받아들였다. 독일 지멘스사의 휴대전화 사업장 노사도 근무시간을 현행 주당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노사 협상안을 승인했다. 작년 12월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미국 제너럴 모터스(GM)는 독일 노동조합과 감원에 합의했다. GM 독일지사 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명예퇴직이나 조기 퇴직 등의 방식을 통한 감원에 합의했다"며 "회사부터 살리고 난 뒤 회사를 떠난 동료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독일 정부와 공공노조는 공무원 사회에 실적급제와 탄력 근로시간 제도를 도입하고,주당 노동시간을 동·서독 지역에 관계없이 39시간으로 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처럼 독일 노동계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정착시킨 주당 35시간제를 사실상 포기하고,구조조정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확대 이후 신규 가입국인 체코 헝가리 등 임금이 싼 동유럽으로 일자리가 속속 넘어가면서 독일의 근로자들은 사용자측에 대해 '협력적 파트너'로 역할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산별노조라는 독일의 금속노련(IG Metal)의 영향력도 급속히 약해지고 있다. 지난 70∼80년대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독일 노조는 그동안 해고법(1969년) 아래에서 막강한 조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사용자는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었고,부당 해고시에는 3주 이내에 노동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등 법적 보호를 바탕으로 임금 협상 등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개별 사업장에서 노조에만 가입하면 산별노조의 임금 협상에 따라 근로조건이 결정되기 때문에 정규직에 비해 큰 차별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각종 사회복지 부담을 사용자측이 부담하고 있는 상태에서 해고법에 따라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없어 사용자측은 추가 인력 채용을 극도로 기피하는 등 경제에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지금과 같은 고비용 체제에서는 자칫 일자리 자체가 저임금 국가로 넘어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독일 노사는 추가 임금 상승 없는 근로시간 연장 등에 합의하고 감원 조치를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가 위기 상황에서 독일 노사의 타협 정신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