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사회적으로 주요한 '아젠다'(의제·관심사)는 누가 선점해야 할까. 시장과 경제,안보와 국제,한·일관계와 과거사 문제 등 갈수록 대립되는 목소리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아젠다 설정은 사회의 여러 주체에서 나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최근들어 사회적 관심사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많은 부분의 주도권을 쥔 듯하다. 연초에 경제살리기 올인정책의 방향설정 이후 동반성장이니,양극화 해소니 하는 과제가 그렇고,독도문제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비롯된 한·일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고위공직자 인사문제에서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런 맥락이다. 대통령이 국정 주요 현안에서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측면과 함께 아젠다 설정에서 여타 부문에 기회를 너무 적게 주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올 만한 상황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스스로 할 만한,혹은 꼭 해야할 만한 아젠다 설정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정치권,특히 야당이다. 근래 야당은 야당 본래의 모습보다 청와대가 선점한 아젠다를 뒤쫓아가면서 논평만 내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한·일관계와 헌재의 신행정수도 위헌결정 이후 행정복합도시 건설,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이 그런 사례다. 물론 여당도 "행정부와 국회가,당과 정부가 각각 본연의 헌법적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자"는 청와대의 주창에도 불구하고 자기 책임하에 아젠다를 선점,국정을 주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다. 경제계도 첩첩이 쌓인 현안의 해결 우선순위를 정하거나,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청와대나 경제 부처에 밀려 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투자활성화와 청년실업,국제금융 환경 변화와 외국인 자본의 국내투자 등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재계가 주도적으로 낼 목소리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데는 노 대통령이 너무 많은 영역에서 아젠다를 선점해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청와대가 조금 보폭을 줄이고 다른 영역에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균형이 잡히지 않을까. 허원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