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문제다. 제대로 된 사람이 문제다. 위로는 고위 각료들이 잇달아 낙마했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어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아래로는 대기업들이 '면접 전문가'가 된 대학생들을 상대로 '괜찮은 인재'를 가려 뽑기가 어려워지자 또 다른 전문가들을 동원해 '면접 가이드북'까지 특별 제작하고 있다. 더 밑으로 가면 아직 '배가 덜 고픈' 사람이 많아서인지 중소기업은 여전히 구인난이다. 1백만명 가까운 실업자가 대기하고 있는 요즘의 '구인난'은 정확히 표현하면 '꼭 맞는(right) 인물'이 없어서 생긴 문제다.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저자인 짐 콜린스가 얘기한 그대로다. 그는 "인재가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는 말은 틀렸다"며 "적합한 인재가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취업과 실업 사이는 백지 한장 차이에 불과하다. '침소봉대'까지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 취업이고 못하면 실업이라면 그럴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결정적 실력차란 과연 무엇인가. 사실 '꼭 맞는' 또는 '적합한' 인재의 기준도 명확지 않다. 고위 공직자에겐 도덕성과 재산 형성과정의 깨끗함이 적합성의 기준인가. 대기업 신입사원이라면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고 글로벌 안목이 있어야 꼭 맞는 것인가. 중소기업에 가는 사람은 눈만 낮추면 되는가. 아무나가 아니라 적합한 인물을 뽑아야 하는 건 분명 맞는 추세다. 특히 개인이 최고경영자(CEO)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는 지식기반경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업종마다 직종마다 하는 일마다 '적합한' 인물의 기준이 크게 다르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자칫 '이런 사람이라야 맞다'는 명제가 허망한 구호로 그리고 실제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의 기를 꺾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적합한 인물의 기준은 상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보험 영업은 어떤 사람이 잘 할까. 일반인들은 '활달하고 발이 넓은' 사람을 꼽는다. 그러나 이제까지 1만명 가까이 사원을 직접 뽑아 본 모보험사 인사담당 임원의 말을 빌리면 정말 보험영업을 잘 하는 사람은 오히려 내성적이고 다소 유약한 사람이라고 한다. 보험계약 체결이 보통 9∼10회는 만나야 이뤄지는 만큼 활달하고 발이 넓은 사람은 두세번 만나서 성사되지 않으면 바로 다른 사람으로 옮겨버린다는 것.반면 내성적인 사람들은 새로 사람을 사귀는 것이 두려워서 한번 만난 사람에게 두고두고 정성을 쏟고 그것이 성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현실은 어떤가. 평생 외국 사람 한번 만날 일 없는 직무에 앉힐 사람을 뽑으면서 토익 하한선을 9백점으로 두는 기관들이 얼마나 많은가. 적합한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면서 막상 뽑는 주체는 과연 적합한 사람을 고르는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있는가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 게 현실이다. 사람이 문제지만 사람이 중요하다. 앞으로 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기업에서 CEO의 꿈을 키우기 위해 입사하려면 어떤 인재를 지향해야 하는가. 망신 당하느니 장관자리도 사양하겠다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면접부터 생고생하느니 친구들과 창업이나 하겠다는 대학생들이 늘어가는 건 과연 좋은 일인가. 지나치게 딱딱한 '인재상' 때문에 새롭게 규격화된 인물들만 늘어가고 우리 사회의 잠재적 에너지가 그냥 묻힐까 걱정돼 하는 소리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