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안경태 <삼일회계법인 대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안경태 < 삼일회계법인 대표 ktahn@samil.co.kr >
해마다 초가 되면 공직자들의 재산 변동 신고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다.
증감액이나 증감 사유가 논란이 되기도 하고,그 와중에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려 고위 공직자가 낙마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은 지탄받을 일이 아니다.
법을 지키면서 부를 키우는 행위는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지난 시절 보아온 공직자들의 부정 축재 모습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공직자의 청렴도를 부와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연말이 되면 공직자들이 양복 깃에 빨간색 사랑의 열매를 다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있는 요즘 물리적 부의 양이 아닌 다른 잣대를 통해 공직자나 기업인을 평가해 보면 어떨까.
즉 자신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부여해 준 사회에 얼마나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지,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얼마나 잘 환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공직자나 기업인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납세와 기부 실적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세금을 제대로,또 많이 납부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판단의 여지가 있는 세금의 경우 더 많이 내는 쪽을 택한다.
우리나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가입해 있는 세계공동모금회에서 집계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모금 총액은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에 이어 5위지만 개인기부 비율은 20%로,세계 평균인 69.5%에 크게 못 미친다.
이렇게 개인 기부 수준에 있어 차이가 나는 이유는 그들 나라에서는 기부 행위를 건전한 사회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행해야 할 가치 있는 일로 인식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기부를 기업이나 조직의 몫으로 여길 뿐 개인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개인기부문화 확산의 싹이 보이고 있다.
최근 몇몇 기업에서 도입하기 시작한 매칭 그랜트(개인이 형편에 맞게 기부를 하면 기업이 그 금액의 일정 부분을 추가해 기부하는 방법)가 좋은 예다.
이런 분위기가 공직사회에도 확산된다면 개인기부 문화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층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국세청에서는 자발적으로 세금을 많이 납부한 성실 납세자를 우대하겠다는 취지에서 세금 마일리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우리사회에서 세금 마일리지와 기부 실적을 쌓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자랑이 되는 성숙한 시민문화가 자리잡아 나갔으면 한다.
이것이 시장경제에서 사회지도층에게 기대하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