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창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jckim@bok.or.kr >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지났다. 강가에는 버들개지가 봉오리를 피우기 시작했고 나뭇가지엔 새싹을 틔우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이렇게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데도 강원도와 부산지방에는 폭설이 내려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경제도 지난 2년 간의 깊은 불황의 늪에서 이제 조금씩 움을 틔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소비지표가 2년 만에 나아지는 기미가 있고 수출은 원화가 절상되는 가운데서도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각 분야에서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하는 것이 앞을 밝게 보게 하고 있다. 지도자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정치권은 화합을 강조하고,언론도 해빙무드를 보도하고 있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싹을 틔우는 식물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때 아닌 외부 충격에는 무척 약하다. 봄이 오는구나 싶은데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지나가면 어렵사리 솟아오르던 새싹은 얼어버리고 다시 싹을 틔우는 데 몇 배의 힘이 더 든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경제라는 생명체를 둘러싼 날씨는 매우 불안정했다. 탄핵정국이 그랬고,행정수도 이전문제가 그랬었다. 한쪽에서는 성조기가 불타고 한쪽에서는 인공기가 불탔다. 국책사업은 저항세력의 반대에 부닥쳐 좌초하기도 했고 성장과 분배의 논란 속에 장롱 속의 아이는 굶어 죽어갔다. 이제 경제라는 생명체가 동토(凍土)를 뚫고 새싹을 틔우고 있다. 그러나 긴 겨울 동안 땅 밑 어두운 곳에서 봄을 그리던 사람들은 아직도 불안해하고 있다. 제발 경제를 흔드는 일이 경제 밖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먼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함께 이룬 세계역사에 유일한 나라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에 걸맞은 정치를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노사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대기업 근로자 중심으로 지나치게 강화된 노조의 힘을 보면서 상당수의 국민들은 염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민들은 말보다 행동하는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97년에 'NATO(No Action Talk Only)'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이것이 위기의 한 원인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제 오랜만에 맞는 봄기운,우리 모두 원론으로 돌아가 우리경제에 새싹을 틔우고 튼튼하게 기르는 계기로 삼자. 우리 경제의 생명은 우리 모두의 자세와 노력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