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 시인 > 대저 먼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먼 길을 가는 생각과 안목이 필요하다. 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백리 길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하고 천리 길을 떠나는 사람은 천리 길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인무원려(人無遠廬)면 필유근우(必有近憂)라 했다. 사람이 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인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 중 하나가 냄비 근성이다. 순간적으로 넘칠 듯 끓어올랐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쉽게 열기가 가라앉는 습성을 표현한 말인데 우리나라의 냄비 근성은 큰 일에서나 작은 일에서나 상견되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근심해야 할 텐데 서로 적당히 걱정하는 척하며 즐기는 듯하다. 나라의 큰 틀을 짜는 정치권들도 마찬가지다. 어떻든 표가 몰릴 만하면 자신의 생각은 한 발 물러서고 어느 쪽으로 줄을 서는 게 유리할까 그 생각만 하는 듯하다. 원래 정치란 들끓는 소수가 여론을 형성하고 그것이 전부인 양 나서게 마련이지만, 말없는 다수는 정치적으로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우리 곁엔 생업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너무 크게 들린다. 그러다보니 말없는 다수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지금, 우리가 지켜온 것들의 수많은 장점들은 다 잊어버리고 세월이 흐르며 생겨난 조그만 문제점만을 부각시켜 이놈들을 통째로 생매장하고자 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나는 좋은 정치(政治)란 무위이화(無爲以化)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위적인 강제성을 띠지 않으며 저절로 그렇게 되어가도록 이끄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정치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면 무엇이든지 밀어붙이고 무엇이든지 극단으로 달려 치고받고 너와 내가 어떻게 다르며 얼마나 다른지를 다투는 각축장 같다. 오로지 힘의 세계다. 머리를 맞대고 백년을 가는 길을 모색하고 천년을 가는 길을 모색하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또한 요즘 우리나라는 개혁피로증후군(改革疲勞症候群)에 시달리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사람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개혁방안을 하나씩 들고 나와 '이렇게 해야 개혁되나니, 자 우리 모두 개혁합시다'하고 개혁을 부르짖는다. 개혁이란 무릇 자기로부터 출발한다. 자기 개혁 없이는 아무 것도 개혁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개혁을 말하면서도 자신은 늘 빼고 말하는 것 같다. 천지의 개벽(開闢)도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인데 말이다. 몇 년 전 학교 공문서(公文書)를 줄이자는 운동이 있었다. 필요 없는 공문을 줄여서 교사들이 시간낭비 정력낭비를 하지 않음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공문서가 줄기는커녕 점점 더 늘기만 했다. 공문서 줄이는 계획에 적극 동참하자는 공문이 오고,공문서가 얼마나 줄었는지 보고하라는 공문이 오고,새로운 공문서를 줄일 방법을 연구하여 보고하라는 공문이 오고,공문이 줄어든 결과의 효과에 대해 보고하라는 공문이 오는 식이다.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더니 어느 새 핫바지 방귀 새듯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게 이런 식이다. 우리에게 아주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냄비근성이 있다 치자.그러면 나라를 경영하는 정치권에서는 그 완급을 조절할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에 휩쓸려 먼저 끓고 먼저 식어서야 되겠는가? 백년을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고,천년을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백리를 가는 사람은 백리를 갈 준비를 하여야 하고,천리를 갈 사람은 천리를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먼 길을 갈 사람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