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ㆍ경제학 > 바늘로 코끼리를 죽이는 방법을 묻는 퀴즈가 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코끼리가 죽을 때까지 바늘로 찌른다는 것이다. 그 일이 가능하고 또 옳은 것인가는 불문하고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끝장을 보겠다는 집념을 나타내는 이야기다. 할 일,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여있는데 한가하게 '수도이전'에 집착하는 것은 바늘로 코끼리 죽이기와 다를 바 없다. '수도이전'은 자체가 목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왜 수도를 옮겨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의미가 없어졌다. 수도권 과밀화 방지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논리는 허구인데도 그 걸 반복 주장한다. 국회는 조만간 연기·공주지역에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는 특별법을 통과시킬 예정으로 있다. 법이 통과되면 총리실과 행정부처 3분의 2 이상인 12부 4처 2청이 이전하게 된다. 왜 어떤 부는 가고 어떤 부는 남는 것이며,그렇게 결정한 기준은 무엇인지 뚜렷한 설명이 없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성격과 기능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정부와 여당은 수도이전 공약으로 한번 본 '재미'를 다시 보려하고,기회주의적인 한나라당은 충청표 붙잡자고 안간힘을 쓰면서 야합,이전대상 부처개수를 흥정한 결과니 그럴 수밖에. 총리실과 정부부처의 절대다수를 대통령과 격리시키는 것은 수도를 둘로 나누는 명백한 분도(分都)다. 대통령과 국회,사법부,행정부 일부가 서울에 남아 있으니 수도를 옮긴 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 건 억지요,헌재의 위헌결정 취지를 왜곡해서 비켜가려는 잔꾀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대표는 일부 부처의 서울 잔류를 들어 "수도는 분명히 지켰다"고 주장한다. 구차한 변명이고 자기기만이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2중대라고 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심장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했는데 환자가 죽는 경우가 있다. 심장수술만 잘하면 뭐 하는가. 인체의 다른 기관이 받을 영향을 몰랐으니 환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땅 사고,건물 짓고,도로 내고,행정부처 옮기면 행정도시는 건설된다. 기념식을 화려하게 치르고 이전부처가 업무를 시작하면 행정도시 건설은 성공한 사업으로 포장되고 선전될 것이다. 마치 심장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낸 것처럼.그러나 알맹이 없는 과대포장은 후유증을 남긴다. 수도권 과밀화 방지와 국토 균형발전 방안은 행정도시 건설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그 주장은 처음부터 충청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을 기만한 것이 아니었던가.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환자가 고통을 받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행정의 비효율과 국가적 낭비,국정운영과 국가 위기관리의 차질 등이 그것이다. 이는 대통령과 총리,행정부처 등 국가의 중추기능이 서로 3백리나 떨어져 있는 경우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점이다. 서로 격리돼 있는 행정부처와 국회의 관계도 순조로울 수 없을 것이다. 분도가 천도(遷都)보다 더 나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정도시의 문제점이 부각되면 서울에 남아있는 다른 부처도,다른 국가기관도 이전하자는 논의는 자연히 제기될 것이다. 결국 분도는 천도로 이어지는 과정을 밟게 되지 않겠는가. 집권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집권하겠다는 야당이라면 아무리 표가 급해도 먼저 생각할 것은 국가 백년대계다. 최소한 통일된 한국의 수도 모습도 한번은 생각해야 한다.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판결을 받았듯이 행정도시특별법도 같은 운명에 빠질 가능성은 크다. 최선의 해법은 국회가 행정도시특별법 제정을 포기하는 것이다. 서울시의회가 이미 공언했듯이 법이 통과되면 헌법소원은 제기될 것이다. 차라리 당당하게 국민투표를 하자.분도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며 1백일 단식이라도 하면 국회의 생각이 달라질까? 국회가 나라를 생각하는 결단을 할 것인지,참으로 답답하다. yoodk99@hanmail.net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