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보이스] 불거지는 생활속의 환경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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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갑록 한국생활환경시험연구원장 >
2005년 4월부터 업소용 식품포장 비닐랩을 만들 때 디-2-에틸헥실아디페이트(DEHA)의 사용이 금지된다. DEHA는 폴리염화비닐(PVC)재질의 비닐 랩에 40∼50%가량 함유돼 있으며 접착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가소제로 첨가되는 물질로 뜨거운 음식에 닿을 경우 환경호르몬 물질이 검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내분비계를 교란하거나 생식기능에 영향을 준다. 특히 안드로겐과 같은 제2의 성징(性徵) 발현에 작용하는 남성호르몬 수용기와 결합하거나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등과 상호 작용해 생체내의 내분비계를 교란시키기 때문에 생식기 이상,기형,각종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DEHA의 사용금지 배경은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소시모)'의 활동 결과다. 소시모 의뢰로 밝혀진 시험결과를 보면 DEHA는 중량기준으로 23.7∼25.9%가 검출돼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적절한 결단을 내린 정부의 금지 조치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즉 비닐 랩 제조에서 DEHA 대체물질 사용시 제조단가 상승으로 제조업체의 거센 항의가 예상되며,DEHA를 내분비계교란물질로 아직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것에 따른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환경 선진국으로 알려진 일본의 후생성과 미국의 환경보호청(EPA)은 DEHA를 내분비계 교란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아직도 추정만 되고 유해성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 미지의 내분비계 교란 물질은 DEHA 이외에도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있다. 최근 비닐 포장재로 만들어진 의료용 링거에서의 DEHP 검출사건도 우리 생활 주변 곳곳으로 파고드는 내분비계교란물질로서 경각심을 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0위인 한국은 산업화가 정점에 있기 때문에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에 따른 생활용품 및 산업제품 중에서의 미확인 내분비계교란물질은 우리가 지속적인 경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각 가정에서는 유리나 자기 이용으로 플라스틱 용기나 랩 이용 자제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 정부,학계 및 연구기관은 생활환경 속으로 파고드는 내분비계교란물질에 대한 인체영향 등이 포함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의 오염현황을 좀더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조사해 사용제한 등의 표준설정과 법적·기술적 대응태세를 신속하게 갖추는 것만이 나와 내 가족은 물론 후손들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