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을 이유로 이달초 물러난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HP) 회장에 대한 동정론이 미국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피오리나 회장이 지난 2002년 단행한 컴팩 인수가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오히려 컴팩 인수야말로 HP의 앞날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HP가 신제품 개발에 주력하지 않는 한 새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더라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며 "HP의 부진은 CEO의 문제가 아니라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한 회사 전체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피오리나,정말로 잘못했나=피오리나 회장은 컴팩 인수 후 약속했던 실적 향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 9일 스스로 총수 자리에서 퇴진했다. 5년7개월의 재임기간 중 50%나 떨어진 HP 주가 때문에 월가에서는 피오리나를 '무능한 경영인'으로 비하했고 이사회는 끝내 그녀를 축출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HP의 영업실적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지난주 발표된 HP의 작년 4분기 매출은 2백14억달러로 월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같은 기간 순익은 12억달러에 달해 전분기 대비 50% 가까이 뛰었으며,최근 순익 증가세는 지속되고 있다. 경제전문잡지 스마트머니의 발행인 겸 칼럼니스트 제임스 스튜어트는 "컴팩을 인수했기 때문에 HP가 그나마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PC 사업부를 가까스로 운영해 올 수 있었다"며 "HP 창업자 후손들과의 갈등 관계가 피오리나를 물러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피오리나가 컴팩을 인수한 것은 성장 한계에 도달한 시장에서 영업을 활성화시키는 최선책은 규모를 키우는 것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며 "피오리나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CEO를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HP 이사회는 최장 4개월의 시한을 두고 후임 CEO를 물색 중이다. 현재 수많은 헤드헌팅 업체들이 후보자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인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HP의 개인용 컴퓨팅과 프린터 사업을 이끌고 있는 보메시 조시 부사장을 유력한 신임 CEO 후보 중 한 명으로 손꼽고 있다. 컴팩의 CEO였으며 최근까지 MCI 회장이었던 마이클 카펠라스도 자주 물망에 오른다. IBM의 글로벌 서비스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존 조이스,모토로라 CEO인 에드워드 잰더 등도 월가 투자자와 헤드헌터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특히 잰더는 지난 99년에도 HP CEO 자리를 놓고 피오리나와 경합을 벌인 인물이기도 하다. FT는 "HP가 경쟁우위를 갖고 있던 프린터 산업마저 '저(低) 마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라며 "종업원들의 떨어진 사기를 북돋우고 제품 혁신을 주도할 CEO가 하루빨리 뽑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