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홍글씨' 출연이 배우 이은주의 자살에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연합뉴스가 22일 사건 발생 후 입수한 이은주의 유서에서 발견됐다. 모두 3장으로 쓰여진 유서속에는 "근본적인…원인…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없을 텐데. 왜 내게 그런 책을 줬는지. 왜 강요를 했었는지. 왜 믿으라고 했었는지"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 '책'이라는 단어는 영화계에서는 통상 시나리오를 일컫는 말이다. 유서에서 이은주는 "잘 웃고, 잘 울고, 잘 자고, 얼마나 밝고 예쁜 아이였는데… 지금은 내 감정 하나 조절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며 스스로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 했다. 이어 "매일같이 되뇌입니다. 일년 전 오늘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자존심도 바닥을 쳤고…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중략) 엄마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 내 상황과 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지난 1년간 출연한 영화는 '주홍글씨' 한 편이었다. 이 같은 표현을 볼 때 이은주가 영화 '주홍글씨' 출연 이후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홍글씨'는 아내(엄지원)와 정부(이은주), 피살자의 미망인(성현아) 등 세여자와 서로 다른 사랑을 나누는 강력계 형사 기훈(한석규)의 이야기를 통해 비극적인 운명에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이은주는 전라로 등장하는 정사신을 촬영했으며 트렁크에 갇혀 피가 범벅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 장면을 연기하기도 했다. 한석규와의 불륜과 엄지원과의 동성연애 등 결코 쉽지 않은 인물 표현을 해내야 했다. 지난 해 10월 이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출연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영화 속 인물(가희)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 바 있으며 특히 트렁크 신에 대해서는 "딱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지옥같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주홍글씨' 출연이 이은주의 자살 원인 중 하나라는 이야기에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던 LJ필름과 소속사 나무액터스측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소속사 나무액터스의김탄 부사장은 "이은주가 캐릭터 설정에 힘들어하기는 했지만 이는 연기자로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고 말했으며 LJ필름의 한 관계자도 "이은주씨의 고민은 다른 여자연기자들이 영화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과 다르지 않았다"며 영화와 자살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한편 이은주는 유서에서 "하나뿐인 오빠, 나보다 훨씬 잘났는데 사랑을 못받아서 미안해. 가장 많이 많이 사랑하는 엄마,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내가 꼭 지켜줄게" 등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미안함을 곳곳에 밝혀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