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적극 공세에 나선 것은 공정위 정책에 대한 대기업들의 불만이 그만큼 누적돼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지난해 하반기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출자총액규제 금융사 의결권 제한 공정위 계좌추적권 부활 문제 등을 놓고 강도 높은 의견을 개진했던 것이 사실. 열린우리당 젊은 의원들과도 수 차례 간담회를 갖고 대화를 나눴지만 정작 대부분의 의견이 주무부처인 공정위에서 묵살돼 정책에 반영되지 않자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냐"는 원성과 불만이 팽배해 있다. 모 경제단체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투자활동을 간섭하는 나라는 아마 자본주의 국가에선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공정위가 자기네 밥그릇(규제업무) 때문에 변화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경제력집중 규제 풀어라 최근 재계가 공정위 조직운영 행태까지 거론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곳은 경제력집중 억제와 관련된 규제다. 두산그룹의 경우 연초 우여곡절 끝에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유권해석'이라는 마지막 고비를 남겨두고 있다.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동종업종 적용제외 조항'에 해당한다는게 두산측 주장이지만 시민단체 등에서 명백한 출자총액제한제 위반이라며 공세를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두산이 대우종합기계 인수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선 공정위가 두산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만약 공정위가 출자총액제한 위반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두산은 과징금 처분을 피할 수 없다. 이같은 양상은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진로 등의 인수를 노리고 있는 다른 대기업들에도 상당한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불확실성도 제거해달라 삼성에버랜드는 공정거래법의 금융지주회사 규정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금융자회사 지분가치가 총자산의 50%를 웃돌면 금융지주회사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려면 총자산을 확충하거나 금융자회사 지분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야 한다. 삼성에버랜드의 지난해 회계연도 가결산 결과 금융자회사 지분의 평가액이 총자산의 49%대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한숨을 돌린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규제가 존재하는 한 언제라도 상황이 바뀌면 공정위의 날카로운 '규제의 칼'은 삼성을 겨냥하게 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호주머니에 넣고 기업활동에 전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공정위 "재계 주장 근거없다" 공정위는 이날 '전경련 보고서에 대한 공정위 입장'이란 참고자료를 내고 전경련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공정위는 전경련이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경쟁촉진이란 공정위의 본연의 기능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데 대해 "출자총액제한 등 대기업집단 시책은 그룹 계열회사와 독립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경쟁을 차단하는 경쟁촉진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특히 전경련이 미국 일본 등의 경쟁당국과 공정위 기능을 비교한 데 대해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력을 확대하는 기업집단 문제가 있다"며 "공정위의 대기업 정책 타당성 여부는 각 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정책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마침 강철규 위원장이 한국경제연구원 초청으로 전경련에 가서 강연을 한 날 전경련이 공정위를 공격하는 보고서가 나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