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10시 경기도 파주 NFC(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 축구대표팀은 보통 A매치를 치른 다음 날이면 가벼운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몸을푸는 회복훈련을 하지만 이날 오전 본프레레호 태극전사들은 여느 소집 훈련일과 다름없이 '혹독한 훈련'을 소화해야 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전날 이집트와의 평가전에서 '졸전'을 벌이고 자정쯤에야 도착해 채 피곤이 덜 풀린 선수들을 꽁꽁 언 그라운드에 모아놓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러닝도 스트레칭도 하기 전에 '훈계'가 시작됐다.


"어제 그러니까 공간을 허용했잖아", "볼이 이렇게 위험지역으로 들어오는데 마크를 안하면 어쩌자는 거냐". 본프레레 감독의 언성은 자꾸만 높아졌다.


한국어 통역 박일기씨는 어쩔 줄 몰라하는 목소리로 전날 보여준 잘못된 플레이를 일일이 '복기'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작년 몰디브전에서 보지 않았느냐. 월드컵 예선은 단 한경기도 쉬운 경기가 없다.

정신 바짝 차려라"고 다그쳤다.


왼쪽 미드필더 김동진(FC서울)은 "감독님도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예민해지신것 같고 그만큼 주문도 많았다.

정신적인 부분을 많이 지적했다"고 말했다.


전반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한 미드필더진과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실점을 허용한 수비라인이 집중적인 지적을 받았다.


훈련을 지켜본 조영증 파주 NFC 센터장과 대표팀 스태프도 본프레레 감독이 경기 다음 날 이런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추위를 피하려고 청색 윈드자켓에 모자를 눌러쓴 태극전사들은 파주의 칼바람보다 본프레레 감독의 칼날같은 언성이 더 무서워 보였다.


주장 이운재(수원)를 비롯해 그라운드에 선 25명의 선수들은 해외파, 국내파 가릴 것 없이 침통해 하면서도 비장한 눈빛으로 본프레레 감독의 손짓을 응시했다.


당장 코앞에 닥친 '최종 엔트리 경쟁'에 대한 압박감보다 전날 이집트전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플레이가 쿠웨이트와의 결전이라는 '대사'를 앞둔 팬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는 자책감이 앞서는 듯 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당초 휴일인 6일 선수들에게 꿀맛같은 한나절의 휴식을 주려고했지만 전날 NFC에 도착한 뒤 '없던 일'로 해버렸다.


대표팀 스태프는 "휴식은 없다.휴일에도 정상적으로 오전 훈련을 소화하기로했다"고 말했다.


이집트전 직후 "선수들의 정신력에 문제가 있었다.처음부터 과감하고 적극적인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는 필요없다"고 한 본프레레 감독으로서는 바짝 '군기'를 잡아서라도 나흘 앞으로 다가온 결전에 대비해야겠다는 절박함을 내비쳤다.


조영증 센터장은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휴식을 준다고 해도 제대로 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선수들은 본프레레 감독의 지적이 끝난 뒤 30분 간 그라운드를 돌았다.


마치 '얼차려' 같은 훈련을 진행하면서 본프레레 감독은 아래편 그라운드에서뛰는 태극전사들을 근심어린 눈초리로 지켜보며 수심에 잠겼다.


훈련이 끝나자 주장 이운재가 선수들을 모아놓고 다시 한번 '정신교육'을 했고이운재가 나가자 이번에는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중고참' 이영표(PSV에인트호벤)가따끔한 한마디로 어린 후배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파주=연합뉴스) 옥철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