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함 보안요원 외 출입금지.' 서울 중구에 있는 전국금융산업노조 사무실 출입구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다. 투표함이 있는 사무실 앞에는 용역회사 직원도 배치돼 있다. 지난 23일 새벽 개표가 중단된 뒤 투표함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제3대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가 실시된 것은 지난 19일.그후 8일이 지났지만 개표작업은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선거에 출마한 김기준(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양병민(전 서울은행 노조위원장) 두 후보진영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이 파이고 있다. 김 후보측은 지난 25일 조흥 제일은행 등 18개 금융회사 노조위원장들과 공동명의로 '금융노조 임원선거 불법 규탄 성명서'를 발표,"일부 은행에서 불법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양 후보를 지지하는 우리은행 노조는 즉각 "부정선거의혹 주장은 선거판 자체를 망치려는 반노동자적인 행동"이라고 맞섰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노총 산하의 대표적 산별노조로 꼽히는 금융노조가 깨질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금융산업 노조가 분열위기에 직면한 것은 허술한 선거관리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당초 선거관리위원회는 전자투표를 실시키로 했었다. 그러나 전산장애로 인해 수기투표로 바뀌면서 투표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일부 투표함의 개표결과 무더기 무효표가 쏟아졌고 부정선거 시비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정치판을 연상시킬 정도의 지나친 선거과열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투표 전부터 개별은행 노조를 줄세우는 등 선거가 과열된 점을 감안하면 이런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분석이다. 노조는 윤리와 도덕을 먹고 사는 조직이다. 특히 금융노조는 화이트칼라의 대표적인 노조다. 이남순 전 한국노총위원장과 이용득 현 한국노총위원장을 배출했을 정도로 영향력도 막강하다. 그런 금융노조가 위원장 선거를 둘러싸고 분열 위기에 직면했으니 '밥그릇 싸움의 극치'라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하영춘 금융부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