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전시공간. 최근 이 두 미술관이 차례로 외국에 `점령`되고 있다. 우선 22일부터 중국미술가들이 `중국미술의 오늘'전이라는 전시제목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입성`한다. `중국미술의 오늘'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전시의도이지만 광복 60주년을 맞은 을유년의 국립현대미술관 첫 기획전으로는 납득이 쉽지 않은 전시다. 이 전시는 지난 해 열린 중국의 `제 10회 전국미전'에서 입상한 3천500여 점 가운데 우수상 이상의 수상작 중 일부와 심사위원들의 작품 등 총 141점을 초청해 꾸몄다. 5년마다 열리는 중국 전국미전은 우리의 대한민국미술대전과 비교되는 공모전으로 이 공모전 수상작을 모아 놓은 전시가 서구에서 주목하는 중국현대미술의 새로운면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가다. 중국 화가들이 세밀하고 섬세한 표현력 등 그림의 기초에 충실하다는 점, 또 중국의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빼고는 색다른 표현기교나 깊이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전시를 찾은 일부 미술인은 중국화가들의 뛰어난 테크닉은 우리 미술지망생들이 보고 배울 점은 많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동안 한국 내 다른 전시나 외국의 각종비엔날레를 통해 선보인 중국미술의 `저돌성'은 찾기 어렵다며 아쉬워한다. 또 10회에 걸친 역대수상작 가운데 엄선한 것도 아니고 작년 한 해의 입상작만을 대상으로 일부를 추려 국내에 전시한다는 것도 한국 미술인들의 자부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전시에 이어 `새로운 세기, 새로운 미술관'(6.10∼7.21)과프랑스화가 프로망제 전시회(11.5∼) 칠레현대미술전(11.11∼)을 통해서도 외국작가와 작품에 전시공간을 할애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올해 9건의 전시 중 해외에서 한국작가들이 참여하는`한국현대미술 뉴질랜드'전을 뺀 8건 중 절반인 4건을 외국작가ㆍ작품전으로 채웠다. 강남의 문화중심지인 예술의 전당 내 한가람미술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은 지난 연말부터 `서양미술 400년전'을 개최하면서 전시공간의 절반 정도를 외국작품들에 내줬다. 프랑스의 국보급 명화들이 줄줄이 걸린 제 4, 제 6의 전시실은 인파로 북적거리면서 곧 관람객 15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지만 `구성과 중심'전이 열리는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의 발길은 한산하기만 하다. 한가람미술관은 또 3월 29일부터 7월18일까지 `대영박물관 서울전시회-세계문명1만년전'에 제 1, 2 전시실을 대관해주고 자체 기획전으로 6월3일부터 27일까지 `해외 청년 작가전'과 6월3일부터 8월30일까지의 `바르비종 회화전'을 개최할 예정이어서 외국 작가와 작품들에 의한 한가람미술관 `점령'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가람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처럼 외국 작가나 작품들에 전시공간을 내준 배경에는 자체적인 기획 및 큐레이팅 능력 부재와 외국 유명작가 전시회를 통해손쉽게 관람객을 동원하려는 한탕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큐레이팅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해 한가람미술관의 경우 각종 협회전과 대관전등으로 올해도 채워질 전망이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은 올 3월부터 스위스바이엘러 재단 소장품 50여 점을 국내에 유치해 3월부터 전시하려다 사실상 무산된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김윤수 관장 부임 후 책임운영기관화, 학예직의 계약직 전환 추진 등과 맞물려 조직 내 불화설이 끊이지 않으면서 기획력 부재문제를 키우고 있다. 이 같은 불화탓에 작년 8월 열린 `평화선언 2004 세계100인 미술가'전을 김관장이 사실상 혼자 기획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중국미술의 오늘'전도 국립현대미술관보다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과 전북도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을 주축으로 기획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서울=연합뉴스) 류창석 기자 kerbero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