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없어요. 일자리도 없어요. 가족과는 연락도 안돼요. 너무 답답하고 앞날이 깜깜해요." 고단했던 2004년 세밑.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라는 낙인과 함께 경기불황, 게다가 고향의 대참사 소식까지 더해 어느해보다 암울한 연말을 맞고 있다. 이번 참사에 고향마을이 완전 파괴돼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못한 스리랑카인 담미카(34)씨는 "불법체류 상태이기 때문에 가족이 걱정돼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한숨지었다. 돈을 벌기위해 98년 입국한 담미카씨는 비자 비용만 700만원 이상인 경비를 마련키 위해 고향에서 큰 빚을 졌다. 공장에서 받는 월급 120만원 가운데 90만원씩 고향으로 송금하면서 고단함도 잊은 채 `빚도 갚고 돈도 벌겠다'는 꿈을 키웠지만 얼마 못가 비자가 만료되고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다. 경기불황 여파로 그나마 근근이 이어오던 일자리를 찾지 못한 지도 6개월이 지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경기도 광주의 한 외국인노동자 지원시설에서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함께 지내며 가끔 들어오는 아르바이트로 조금씩 돈을 모아보지만 한달에 버는 돈은 40만원을 넘지 못한다. 그나마 10만원을 고향에 송금하고 아르바이트를 위한 휴대폰 사용료며 차비 등을 빼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알로미(31)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10년전 한국행 경비를 마련키 위해 우리돈 1천만원 가량을 빚으로 떠 안은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면 빚을 다 갚기 전에는 돌아가고 싶어도 차마 갈 수 없다.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알로미씨도 월급을 받아본 지 오래됐다. 일주일에 겨우 한 두건 들어오는 일거리는 `묻지마' 아르바이트. 특히 사람들눈에 띄는 공사장이나 비닐하우스 작업이 불법체류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해본 일, 안해본 일' 가리지 않고 일을 해도 알로미씨가 한달에 손에쥐는 돈은 30만원이 채 안된다. 자신의 상황이 이런데도 마음은 해일 피해를 입은 고향에 가 있다. 2004년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 구로구 한국외국인근로지원센터 앞에서는 영하의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동남아 해일참사 피해가족돕기 바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지진해일에 큰 피해를 입은 스리랑카인들과 함께 비록 고향에는 별피해가 없지만 같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로서 고통을 나누기 위해 방글라데시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10여 명도 함께 했다. 이들은 서툰 한국말로 물건을 팔아보려 했지만 도심 번화가도 아닌 외곽지역 한귀퉁이에 자리한 지원센터 앞 바자회장에는 오가는 시민도 뜸하고 그나마 지나가는이들도 행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스리랑카 공동체 페마 랄 회장은 "고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성탄절에받은 생필품을 다시 모으고 바자회도 열게 됐다"며 "고향의 빚 때문에 가족을 보러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조 기자 cimin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