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성공단의 응급 의료체계가 긴급을 요하는 안전사고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27일 개성공단에서 추락사한 왕모(36.서울 광진구)씨 응급조치와 남측 후송과정을 지켜 본 왕씨 동료 근로자 김모(47)씨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응급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남측에 인계될 때까지 1시간 30분 가량 소요돼 소생 가능성을 막아 버렸다"고 주장, "사고 원인부터 후송 과정까지 명백히 밝혀달라"고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왕씨 후송에 동행했던 같은 회사 근로자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왕씨 추락부터남측 출입국사무소(CIQ)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시간 15∼25분. 공사 현장에서 북측 CIQ까지는 대략 3∼4㎞로 차량으로 10∼20분이면 닿을 수있는 거리임을 감안하면 후송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왕씨는 이 시간동안 산소마스크 등 아무런 구호 장비가 없는 1t 트럭과 RV 차량에 실려 옮겨졌다고 김씨와 유족들은 주장하고 있다. 현재 개성공단에서 안전사고 발생시 공사 현장→현대 아산 또는 관리위원회→북한 협의절차를 거쳐 남측으로 후송되며 의료 인력은 북한측 의사 1명이 고작이다. 김씨에 따르면 왕씨가 ㈜SJ테크 공장 건물 3층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다 떨어진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은 27일 오후 4시 30∼40분께. 왕씨는 2층에서 작업하던 김씨 등 근로자에 의해 1t 트럭 짐칸에 실려 인근 현대 아산 컨테이너 박스로 옮겨져 북한측 의사에 의해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후 김씨가 뒤따라 컨테이너 박스에 도착한 시각은 5시께. 김씨는 "당시 컨테이너 박스에는 평상복 차림의 의사 1명이 있었으나 어떤 응급조치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왕씨는 김씨와 회사 사장 등 2명과 함께 다시 들것에 누운 채 RV 차량 뒷좌석에실려 오후 5시 25분께 북한측 차량 인솔로 북한측 CIQ에 도착했다. 왕씨는 이 곳에서도 북한군 인솔자가 나올 때까지 김씨 등이 "생명이 위험하니빨리 남측으로 가게 해달라"며 수차례 독촉했지만 2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했다. 남측 CIQ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55분(통일부와 김씨 증언이 일치). 왕씨는 미리 구호 장비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던 119 앰뷸런스에 실려 파주시 금촌 파주명지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나 이미 숨을 거뒀다. 김씨는 "왕씨가 추락 직후에는 코로 약간의 피가 흘렀고 입에 거품을 물고는 있었지만 손을 움직였고 계속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며 "그러나 남측 119 구조대에 인계된 직후 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계속했으나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김씨 증언 등을 종합해 볼때 ▲공사 현장에 안전시설(그물망, 안전모등)이 미흡했고 ▲응급 구호 시설 전무 ▲신속한 후송 체계 미흡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남측 근로자 300∼400여명이 체류하고 있고 체류 인력 증가에 따른분초를 다투는 안전사고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개성공단 현장에 최소한의 의료 장비와 인력 배치, 신속한 후송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통일부 사업지원단 관계자는 "내달 11일 의사 4명을 포함한 의료진 8명이 상주하고 심전도기 등 의료기기가 갖춰진 개성병원이 개원되면 응급 의료체계가 구축될것"이라며 "병원 개원 전까지 개성공단 현지에 앰뷸런스를 배치하고 후송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북측과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연합뉴스) 김정섭 기자 kims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