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5:50
수정2006.04.02 15:54
[ 참석자]
강은현 법무법인 산하 경매실장
정광영 한국부동산경제硏 소장
김학수 월드건설 과장
이월무 미래A&C 사장
박성길 대우건설 주택사업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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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현업 종사자들이 지난 22일 서울역 인근 레스토랑에서 조촐한 송년회를 가졌다.
대형 건설업체 주택사업 실무자,중견 건설업체 분양 실무자,디벨로퍼(부동산개발사업자),경매 전문가,토지 전문가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문 분야가 다양하다보니 부동산 각 분야의 올해 시장 얘기를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송년회는 한마디로 정부 부동산정책에 대한 '성토의 장'이었다.
이날 오후 6시30분 모임 참가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죽는 소리부터 했다.
# 중개업자들 입만 열면 정부 욕
○이월무 사장="올해는 신규사업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난해 분양한 사업 정리하는데 치중했어요.
분양이 안될 게 뻔하니까요.
그런데 계약자 입주 시키느라 진이 다 빠졌어요.
그나마 우리 회사는 치고 빠지기를 잘해서 다행이지 앞으로 입주가 안돼서 부도나는 시행사 많이 나올 겁니다.
중도금무이자로 계약한 사람들 가운데 50명만 나자빠지면 시행사가 수십억원을 물어줘야 해요."
○정광영 소장="부동산은 심리전이에요.
신문 방송이 온통 집값 떨어진다고 난린데 누가 집사겠어요.
제가 아는 시행사 사장님 한분은 그렇게 말렸는데도 지난달 분양에 나섰다가 요즘 피를 말리고 있어요."
○박성길 과장="제가 올해 충청권 사업을 담당했는데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어요.
10월까지만 해도 조치원 천안 대전에서 승승장구했는데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 이후 시장이 싸늘하게 식었어요."
○김학수 과장="내년에 보수적으로 사업을 하기로 했어요.
분양성이 보장되는 사업 위주로 선별수주하고 있지요."
○강은현 실장="어제 중개업자 망년회가 있었는데요.
7시 약속인데 6시45분에 절반이나 와있더라니까요.
5월엔 8시에도 오지않은 사람이 많았는데.그만큼 일거리가 없다는 얘기예요.
중개업자들 입만 열면 정부 욕이에요."
생맥주가 한잔씩 돌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 소장="IMF때는 느닷없이 맞아 기절했다가 동시에 일어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부동산을 서서히 말려죽이고 있어요.
이러면 단기간에 일어나기 힘들어요."
○이 사장="IMF때는 있는 사람들이 돈을 썼는데 지금은 안쓴다는 것이 문제예요."
○김 과장="현 정부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동산시장을 연착륙시켜야 하는데 경착륙도 아니고 붕괴시키고 있어요.
정책의 방향이 잘못됐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바꿔야 하는데 고집만 부리는 형국이에요."
○이 사장="저는 '노빠'예요.
골프치다 노사모 전화받고 투표하러 간 사람이에요.
그런데 분배정책이 경제와 서민을 죽이고 있어요."
# 경매 시장엔 온통 서민주택
○강 실장="IMF땐 고금리때문에 경매 물건이 폭증했지만 지금은 저금리인데도 경매 물건이 급증하고 있어요.
서민들이 저금리도 감당할 힘이 없나봐요.
IMF때처럼 한꺼번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주저앉고 있어서 사람들이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게 큰 문제예요."
취기가 어느정도 오르자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이 서민만 잡는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정 소장="강남 사람 잡으려다 실제로는 서민만 잡고 있어요.
경매시장 보세요.
온통 다세대주택만 경매에 쏟아지고 있잖아요."
○이 사장="제가 강남에서 빌라개발사업을 많이 했는데요,강남 사람들 '지금만 같아라'하는 분위기예요.
IMF때도 부자들은 오히려 좋아했잖아요."
○정 소장="없는 사람은 자산의 99%가 부동산이에요.
통장에 돈 없어요.
이자내야 하는데 수입은 없고,사채까지 빌려쓰다 망하는 거예요.
그런데 정부는 집값 잡았다면서 자화자찬이에요."
○강 실장="지난주 성남에서 50억원짜리 공장이 경매에 나왔어요.
그런데 그 덩치 큰 물건을 무려 10명이나 사겠다고 덤볐어요.
그 물건 시세가 1백억원도 넘어요.
57억원에 낙찰됐는데 그사람 30억∼40억원은 먹었을 거예요.
있는 사람들 물 만났어요."
○김 과장="대세상승의 과실은 모두 있는 사람들이 가져갔어요.
반대로 대세하락의 고통은 서민들만 받고 있어요."
박과장이 거래실종 문제를 꺼내자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박 과장="집값을 잡는 건 좋지만 거래는 시켜야죠.경제는 돌고돌아야 하잖아요."
○김 과장="거래 두절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진짜 엄청나요.
중개업소 이삿짐센터 인테리어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집도 장사가 안돼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경제가 좋아지기를 바라겠어요."
○정 소장="투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죽이고 있어요.
숨이 붙어있을 때 서둘러 약을 먹여야 하는데 기절한 사람에게 약먹이면 약이 목에 걸려 죽어요."
너도나도 비관적인 말이 쏟아지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내년에도 보수적으로 사업해야 겠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특히 한치 앞도 예측할 수없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랬다.
# 부자들 요즘 물 만났어요
○정 소장="저는 부동산 강의를 많이 나가는데 요즘 정책에 대한 강의를 못해요.
강의하기 전 1가구3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제를 연기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아 글쎄 강의도중에 말이 바뀌니 어떻게 강의하겠어요."
○이 사장="신행정수도와 김포신도시를 보세요.
어떻게 정부정책을 믿고 사업을 하겠어요.
사업하는 사람들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불확실성이에요."
○박 과장="부동산시장에선 혼돈의 발단이 신행정수도예요.
대안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혼돈상태예요.
지금은 어떤 회사라도 충청권 사업에 대해 결단을 쉽게 못내려요."
모임 막판엔 관심이 내년 재테크 쪽으로 옮아갔다.
○정 소장="강 실장님.내년에 경매시장에 들어가야 하나요.
제 생각엔 내년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
○강 실장="사실 내년이 최대 기회가 될 겁니다.
오늘 경매에 부쳐진 물건이 올 봄에 부도난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지난 봄 이후 부도난 물건이 내년에 대거 경매에 나오게 돼요."
○김 과장="IMF때 경매로 재미본 사람들이 많아서 경매를 노리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 소장="지금이라도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게 해 경매 물건이 넘치지 않도록 해야할 겁니다.
시장에서 매물이 소화돼야 부동산시장이 붕괴되지 않습니다."
정리=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