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영 < 중앙대 법대 교수 > 서울지하철 전동차의 객실의자를 불연제품인 스테인리스 의자로 모두 바꾸는 원인이 됐던 대구지하철 참사,만두업계를 불황에 빠뜨리게 한 불량만두사건,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어이없이 앗아간 미니컵 젤리사건과 씨랜드 화재,그 외에도 자동차 급발진,PPA의약품 등은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비자안전 문제다. 생활 곳곳에서 소비자들은 안전을 위협받고 있지만 매번 피해자가 발생한 후에야 부랴부랴 법률과 제도를 고치는 '사후약방문'식의 대처는 보는 이를 더욱 답답하게 한다. 그럼 앞으로도 이러한 인재(人災)에 노출이 된 채 무방비상태로 지내야 하는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안전문제에 대해 경제주체별로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먼저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스스로 상품의 위험성 주의사항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이들에게 소비 대상물을 제공하는 기업 역시 더욱 안전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자체 안전검사와 기술개발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소비자보호법 식품위생법 농산물품질관리법 전기용품안전관리법 등 법률과 소방방재청 산업자원부 농림부 해양수산부 식품의약청 등 많은 관계부처,지방자치단체와 관련돼 있는 복잡한 소비자안전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취급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제정돼 있는 법률과 규칙이 잘 준수되고 있는지만을 살펴보는 소극적인 자세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산업의 기술 수준을 파악하고 경제발전 방향을 예측하면서 아직 법률로 규제돼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발생 가능성이 있는 분야의 새로운 관리영역들을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꾸준히 개척해 나가야 한다. 얼마 전 보도를 통해 접한 PPA 성분의 감기약이 갖는 위해성 사례도 이의 범주에 해당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밝혀진 PPA 성분의 영향력은 통상적으로 정해져 있는 규제가 잘 준수되는지,그 거래형태에 불합리한 점은 없었는지를 살펴보는 것 이상으로 정부 활동이 소비자 안전문제에 있어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역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소비시장에 무수하게 등장하는 수많은 제품들은 현대인의 생활을 풍성하게 하는 반면 현대 과학으로 인식할 수 없는 위해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제품으로부터 소비자의 신체적 안전을 지속적으로 향상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 단계나 기술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국가의 제품안전성 확보 정책은 현재의 경제수준보다 발전된 소비제품이 생산되도록 안전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국가가 안전기준을 지속적으로 높임으로써 산업체는 제품의 안전 향상을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하게 되고 이로 인해 소비자 안전문제는 어느 정도 예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수준과 속도로 안전 기준을 강화할 것인가는 해당 국가의 기술 수준,경제발전 수준에 따라 좌우돼야 한다. 이 때문에 경제문제를 다루는 정부부처가 소비자보호에 관한 과제를 관장하는 것이 국가 전체적 경제정책과 소비자정책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합리적이라고 본다. 현재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 소비자 정책의 소관문제에 관해 검토를 하고 있다. 소비자정책의 소관을 결정할 때 수많은 관계부처와 연관된 소비자안전문제를 간과한 채 소비자거래 분야에 중점을 둬서는 안된다. 소비자거래에 국한해 소비자정책을 결정할 경우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적 안전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소비자의 생명이나 건강과 관련된 법익이 소비자거래에 의한 재산적 법익보다 우위에 있음을 우리 헌법은 명시하고 있다. 모든 정책에서 이를 고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정책결정을 하는 것이 헌법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은 국가기관의 의무다. 헌법에 합치하는 소비자정책은 경제발전 단계나 기술수준에 대한 고려 위에서 소비자안전이 충분하게 보장되도록 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jyyi@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