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식 < 경기대 산업공학과 교수 > 생산활동에서 표준화를 토대로 품질관리를 하지 않으면 무한경쟁의 파고를 넘기 어렵다. 왜냐하면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품질을 관리하기 어렵고,품질이 관리되지 못하면 점증하는 무역전쟁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품질이 곧 경쟁력임을 전제한다면 우리나라의 품질은 많이 뒤져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우리나라의 국가별 경쟁력 종합순위가 지난해보다 11단계나 낮은 29위로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1964년 1억달러였던 수출이 40년만인 올해 2천억달러를 돌파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산업생산성이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산업생산성이 나쁜 것은 '품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품질이 좋다는 말은 두 가지 요건에서 평가돼야 한다. 첫번째는 일정 수준에 도달돼야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균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정한 수준이란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하며 균일해야 한다는 것은 동일한 조건에서 생산·공급되는 품질이 일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제품치수의 경우 25±0.1mm로 규정된 표준이 있다면 25mm는 요구되는 수준이고 ±0.1mm는 균일해야 하는 최소한의 허용차이다. '어떠한 품질의 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하는가'라는 문제는 철저하게 고객이 누구인가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식품을 인도에 수출하면서 '소머리표' 상표를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때문에 품질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조직이 시스템적으로 움직이고 최고 경영자의 품질에 대한 이해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품질경영의 핵심 요건이다. 품질을 이해할 때 상품 그 자체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품질도 포함시켜야 한다. '은행에서는 고객에게 무엇을 제공하는가''우체국으로부터 고객은 무엇을 얻는가''열차를 이용하면서 손님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가' 등을 생각하면 그 해답은 '서비스 품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행과 우체국의 상품은 돈이나 우표 엽서가 아니다. 기차나 승차권이 철도청의 상품이 될 수 없다. 돈은 한국조폐공사,우표는 인쇄소,기차와 승차권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일 뿐이다. 은행이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고객에 대한 서비스 품질이 좋아야 한다. 우체국이나 철도청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서비스 공급자는 누가 고객이며,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서비스 품질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제조기업에서 원부자재를 투입하고 제조공정을 거쳐 제품을 생산하는 '투입·산출시스템'은 서비스 품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학교를 예로 들어보자.입학시험을 거쳐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은 기업에서 원부자재 확보를 위해 검사를 하고 물품을 구매하는 절차와 같다. 대학에서 커리큘럼에 따라 학사일정을 진행하고 중간·기말시험을 보는 등의 일은 기업에서 제조공정을 관리하고 중간검사를 거쳐 품질을 확인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기업과 달리 고객이 누구인지,고객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 지에 대한 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학생을 고객으로 생각하는 과오 때문에 대학이 생산하는 상품이 고객(국가 사회)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지 않는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 학생과 교수,직원은 내부고객일 뿐이다. 대학의 외부고객은 국가나 사회다. 따라서 대학의 상품은 국가나 사회가 요구하는 '유능한 인재'인 것이다. 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을 설계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품질경영의 발전과정은 제조기업의 근대화 과정과 흐름을 같이 한다. 글로벌화된 무역환경이나 소비자들의 의식구조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은 곧 경쟁력으로 나타난다. 제조기업의 상품 품질은 물론이고 국가기관이나 공공부문의 서비스 품질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 요소가 된다. hslee@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