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에 대한 욕심보다 동생의 생명을 살리는큰 일을 했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8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행정고시 검찰사무직에 최종합격한 이정국(30)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합격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998년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해오던 이씨는 지난해 11월5일 동생 정길(26)씨가 급성 전격성 간부전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들었다. 2000년부터 행정고시 1, 2차 시험에서 5차례 연거푸 떨어지다가 기대했던 지난해 2차시험 결과가 또다시 `불합격'으로 나오자 좌절감에 빠져있던 때였다. 충남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 을지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동생 정길씨가피곤하고 입맛이 없어 감기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고 병원을 찾았다 `급성 전격성 간부전'이란 진단을 받은 것이다. 급성 전격성 간부전은 간의 기능이 급속히 상실되는 원인불명의 병으로 사망률이 70%에 달하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날 새벽부터 정길씨는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급히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당시 정국씨는 간의 절반을 동생에게 떼어주면 간이 재생하는데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준비해 온 행정고시를 사실상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동생을 살려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의 간을 이식해주기로 결심하고 서울대 병원에서 11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한달을 대전 집에 내려와서 쉬다가 지난 1월 중순부터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올라와서 이를 악물고 공부해 1차시험에 합격했고 7월초 치러진 2차시험도 거뜬히 통과했다. 특히 이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조금만 공부해도 쉽게 피곤해지기 때문에 눈이 충혈되는 등 악조건 속에서 1차와 6일간의 2차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올해는 육체적으로 힘들었어도 동생의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에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외국에 비해 낙후돼 있는 과학수사를 실제 업무에 접목시키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대전 집에서 쉬고 있는 동생 정길씨도 "내 생명을 살려준 형이 시험에 붙어 정말 기쁘다"면서 "몸이 완전히 좋아지는 대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대전=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