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의 자긍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첫째는 현재의 위상,다음은 전통과 찬란한 문화일 것이다. '필트다운인 사건'으로 대표되는,인류의 조상 발상지를 둘러싼 영국ㆍ프랑스 학자의 오랜 논란이나 일본의 고대역사 왜곡,정복자들의 문화재 약탈 등은 모두 대대로 내려온 자국의 뿌리와 힘의 과시를 위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약탈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각국의 노력 또한 민족의 정체성 및 역사성 확보를 위한 싸움에 다름 아니다. 문화재는 역사의 증거물이고 따라서 제아무리 화려했던 과거도 유물 없이는 입증할 수 없다. 선진 각국이 시대적 학술적으로 귀한 문화재를 모아놓은 박물관에 막대한 예산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건 그런 까닭이다. 우리 역사의 보고인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앙박물관)이 17일 폐관식과 함께 30여년에 걸친 경복궁 시대를 마감하고 일시 휴관에 들어갔다. 1909년 11월 대한제국 창경궁박물관으로 개관한 중앙박물관은 15년 말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바뀌는 등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 45년 12월 경복궁에서 국립박물관으로 출범했지만 6·25 때문에 53년 남산 분관으로 갔다가 55년 덕수궁 석조전으로 다시 옮겼다. 72년 8월 경복궁내 신축건물로 이전했다 87년 구 중앙청 건물로 이사했지만 95년 건물 폭파와 함께 용산 이전 계획이 수립된 뒤 그간 사회교육관을 증개축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중앙박물관엔 13만5천여점의 귀중한 유물이 소장돼 있다. 오타니 컬렉션같은 해외 유물도 있지만 대부분 선사시대부터 조선조에 이르는 우리 문화재로 세계 어느 나라의 것과도 다른,소박하면서도 깊이있고 세련된 한국인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10월 서울 용산에 새로운 둥지를 튼다. 카(E H Car)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 세계화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시대를 맞아 단순한 유물보관소가 아니라 한민족에 꿈과 자긍심을 심는 민족문화의 전당이자 국민의 박물관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