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판화 작가인 황규백(72)화백이 30여년간의 판화작업을 끝내고 새롭게 시도한 유화로 관객들과 만난다. 오는 21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10년만에 갖는 개인전에서 황화백은 3년전부터 작업하기 시작한 유화의 세계를 선보인다. 1970년 뉴욕으로 건너간 후 여러 나라를 돌며 작품활동을 해 온 그는 이케다 마쓰오,마리오 아비티와 함께 동판화로 국제적 명성을 얻어왔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최초로 70년대에 뉴욕 크리스티경매측과 5년간 전속 계약을 맺어 경매에 작품들을 출품하기도 했다. '말년에 웬 유화냐'는 질문에 그는 "이젠 동판화를 안 할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글씨를 못 쓸 정도로 체력이 달리고 너무 힘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평생 판화만 했지만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수가 3백점 약간 넘을 겁니다. 한창 때 1년 내내 해봐야 10여점밖에 못 만들었어요." 그가 주로 사용하는 메조틴트 기법은 장시간의 작업을 요하는 데다 테크닉 구사도 힘들다. 평생 소원이 유화를 마음껏 그려보는 것이었다는 황 화백은 "이제야 소원을 풀게 됐다"며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유화는 가족 이외엔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는 그는 "사람들이 유화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 흥분도 되면서 한편으론 두려움이 앞선다"고 고백한다. '판화는 좋은데 유화는 별로'라는 평을 듣지 않기 위해 이탈리아를 자주 방문,프레스코 벽화를 많이 연구했다고 한다. 유화 역시 그가 그동안 추구해 온 판화의 세계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잔디 위의 흰 손수건'은 그의 동명 판화작(1973년)과 같은 소재를 다뤘다. 하늘을 벽 삼아 펼쳐진 손수건 윗부분에 두 개의 못을 박아 마치 손수건이 하늘에 걸린 것 같은 모습이다. '스카프가 있는 첼로''달과 사다리' 등은 바이올린 우산 사다리 바위 같은 소재를 이용해 섬세하면서 때론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창출해 낸다. 황 화백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초현실 또는 판타지라고 말하지만 현실공간의 일부를 통해 관객이 전체를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한다. 반응이 어떨지 몰라 판매가격도 화랑측에 일임했다고 한다. 뉴욕에서 활동한 한국 작가치고 황 화백만큼 '부와 명성'을 함께 쌓은 이도 드물다. 뉴욕 소호에 꽤 큰 스튜디오를 갖고 있는 그는 70년대 현지에서 같이 활동하던 백남준 김환기 등이 부러워했을 정도로 '인기 작가'였다. 황 화백은 앞으로는 "인물도 그려 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11월5일까지.(02)734-6111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