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뒷말 많은 한은의 '깜짝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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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특성으로 흔히들 '보수성'을 꼽는다.
조직 자체로 보면 경제부처 관료들도 머리를 저을만한 보수·관료적 문화가 온존하고 있다.
이같은 한은의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몇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물가 안정'을 제1 목표로 삼는 중앙은행의 조직성격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 아니냐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치고 나가기'가 아니라 '지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가를 큰 흔들림 없이 지키고 이를 통해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지원하는 것,따라서 일하는 방식(시장에 대한 영향력)도 보이지 않게 '예측가능한 수준'에서 행사돼야 한다는 것을 한은 관계자들이 스스로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런 범주에서 보면 지난 7일 금리 동결 후 이어진 박승 한은 총재의 배경설명은 완전히 그 궤도를 일탈한 것 같다.
박 총재는 이날 "시장은 훈련이 덜 됐다.재경부 말만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손해를 봐야 훈련이 된다"고 말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를 '한판 붙자,맛좀 봐라'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금리 동결 소식에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던 시장은 이 말이 전해지자 큰 혼돈을 겪었다.
금리가 급등하고 채권값은 폭락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앞장서서 말 한마디로 채권값을 폭락시킨 셈이다.
이는 중앙은행이 갖고 있는 긍정적 측면의 '역할과 정책의 보수성'과 그 결과인 '방식의 합리성'을 훼손한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이날 발언은 박 총재 스스로 강조했던 '예측가능한 금리정책'과는 더욱 거리가 먼 것이었다.
시장이 금리인하를 예상했던 것과 반대로 결정이 난 것을 차치하더라도 말 한마디로 금리를 하루에 0.20%포인트씩 올려버린다면 누가 이를 예측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박 총재 스스로 취임 초기에 "통화정책과 관련해 깜짝쇼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한은 내부에서조차 박 총재의 이날 과도한 발언으로 향후 신축적인 금리정책의 여지를 없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용준 경제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