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엊그제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우리나라의 일부 금융 관련 법과 제도는 현실에 비해 너무 앞서가는 측면이 있다"고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증권관련 집단소송제가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보완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진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그동안 증권 집단소송제는 우리 경제상황에 맞지 않아 부작용이 클 것이란 지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이유에서 경제단체들도 제도 도입을 재검토하고,만약 도입이 불가피하다면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철저한 보완책 마련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 제도가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함께 현 정부의 핵심 개혁과제중 하나라는 점 때문인지 정부 내에서 제도보완을 말하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라서 비록 제도 시행을 3개월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윤 위원장 발언을 계기로 이 제도의 도입 여부 자체부터 다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증권 집단소송제도는 기업들의 분식결산 부실공시 등에 대해 소액주주들이 책임을 묻게 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분식회계에 대한 개념과 범위가 모호하고 증권거래나 회계관련법의 회계처리기준에 대한 해석이 통일되지 않아 소송 남발과 그로 인한 제도상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특히 과거 회계관행상 크고 작은 분식회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기업이 거의 없다는 것이 우리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분식회계 사실을 털어버릴수 있는 규정이 없는 탓에 줄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제도를 시행하는 미국에서조차 집단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가가 폭락하고,소송에서 지는 회사는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되는 일도 허다했다. 소송에서 이긴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거의 없는 대신 변호사들만 고수익을 올리는 것도 일종의 심각한 부작용으로 볼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미국에선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집단소송제도가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오히려 소액주주들에게 손실을 준다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고,정부와 의회가 관련법을 제정하는 등 소송제기 요건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없는 제도를 새로 만들면서까지 기업활동을 견제하려는 우리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우리 정부도 왜 재계가 법 시행 연기나 과거 분식에 대한 일괄사면을 요구하는지 다시한번 잘 검토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