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이 뭐길래..." 최근 사회전반에 불고 있는 `10억원 만들기 신드롬'의 환상을 쫓던 아버지와 딸이 돈을 모두 탕진하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지방의 한 세무서에서 9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A(57)씨는 1993년 부인과 사별하고 외동딸인 B(30)씨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B씨는 서울에 있는 번듯한 대기업에 다녔지만 "격무로 힘이 들고 승진도 누락된다"며 지난해 5월 사표를 내고 서울 양평동의 옥탑방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직인 아버지와 희망없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고교와 대학입학때 `수재'라는 칭찬을 들으며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던 B씨는 직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해 팀장까지 맡았지만 큰 프로젝트 담당자 자리에서연거푸 밀려나자 스스로 `한계'라고 속단, 퇴직을 결심했던 것. 이들이 손에 쥔 것은 B씨의 퇴직금 5천만원. 풍족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삶에 빠졌던 A씨 부녀는 당시 사회적으로 불기 시작한 `10억원 만들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B씨는 퇴직한 뒤 재취업이 안되자 아버지에게 "앞으로 1년간 10억원을 벌지 못하면 삶의 희망이 없다"며 "10억원을 못 벌면 같이 죽자"고 제안, 10억원을 벌기 위해 `작전'에 착수했다. 이들은 퇴직금을 절반으로 나눠 반은 주식에, 나머지 반은 로또복권에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주가는 이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인생역전'을 기대했던 로또복권도 2천여만원 어치를 샀지만 150만원 내외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 3등에 올해초 `2번' 밖에 당첨되지 못하는 행운에 그쳤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퇴직금 5천만원을 이런 방법으로 1년만에 허무하게 날려버린부녀는 지난달 22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기로 했다. 동반자살 사흘 전 `이제 저 세상으로 갈 때가 돼서 간다'는 내용의 유서를 써놓은 이들은 딸이 먼저 목숨을 끊으면 아버지가 시신을 수습한 뒤 뒤따라 죽으려고마음을 먹고 딸이 먼저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딸의 뒤를 따르지 못한 A씨는 다른 방법으로 목숨을 끊으려고 `치사량'까지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지만 마침 월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이 다행히 발견, 병원으로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4일 A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들은 빚이 있거나 특별한 병을 앓지도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단박에 일확천금을 얻으려다 실패하자 결국 비극을 초래하고말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기자 hska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