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義錫 < 광운대 전자공학부 교수 > 국내 대학 공학교육 개선을 목적으로 한 사단법인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이 설립된 지 지난달 말로 만 5년이 됐다. 기계 전자 토목 건축 등 공학관련 11개학회,삼성 현대 등 5개 대기업,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산업자원부 등 관련 정부부처가 공동으로 2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9년 8월30일 정식 출범했다. 일반인에겐 공학교육인증이라는 게 좀 생소할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은 70년 전인 1934년 공학 교육에 대한 인증제가 도입됐고 영국 캐나다 등 다른 선진국들도 오래전 이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은 간단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당시 미국 산업체는 공대교육에 대해 "불량품만 양산하고 리콜없는 교육"이라는 불평이 매우 컸다. 미국의 대학들은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정하고 산업체의 요구를 수용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공학교육인증제를 도입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의 과학기술과 산업이 세계 최고가 되는 근간이 됐다. 우리나라 대학이 좋은 교육을 할 수 없는 이유로 여러 가지가 꼽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대학교수를 평가하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교수 평가항목은 대학의 기본사명인 교육,연구,사회봉사의 3개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교육이나 사회봉사 점수는 교수별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고 결정적인 차이는 연구실적에서 나온다. 이 연구평가 항목은 보통 연구논문 게재실적과 외부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수행하는 연구 프로젝트의 액수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교수들은 연구비 수주와 논문발표에만 전력하게 된다. 외관상으론 이러한 평가 방법이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방법 때문에 속으로 멍(?)드는 부분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학생들에 대한 교육 소홀이다. 외국대학 교수들은 공대 졸업생이면 누구나 갖춰야 할 11가지 능력을 분담해 가르친다. 11가지에는 전공분야의 전문적인 능력 외에 비전공 분야 능력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엔지니어로서 사회에 대한 윤리 및 도덕적 책임의식,효과적으로 자기의 의사를 구두 및 리포트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제품의 원가계산 등 경영의 기본지식,팀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능력 등이다. 각 교수는 이 중에서 자기가 담당하는 과목에서 2∼3가지 능력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학과 전체로는 11가지가 몇번씩 중복돼서 커버되도록 학과 커리큘럼이 짜여진다. 문제는 이러한 교과과정을 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교수는 매년 자기가 맡은 항목에 대해 평가해 만족할 만한 목표치에 도달했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만일 달성하지 못한 항목이 있으면 원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교수방법 등을 도입,교육한 뒤 재평가해 개선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CQI(Continuous Quality Improvement)자료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CQI를 교수별,학과별 그리고 공대 전체가 보유하고 있다가 희망하는 대학은 외부 인증 평가기관에 인증평가를 신청해 일정수준 이상이 되면 인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난 5년간 한국도 이런 새 교육방법으로 교육개선을 해온 많은 대학 중 20여개 대학이 본 한국공학교육인증원으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매년 인증을 받고자 하는 신청 대학수가 증가하고 있어 조만간 인증을 통한 양질의 졸업생이 많이 배출돼 산업체에 공급되므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부실 교육에 대한 산업체의 불만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 12개국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15년 전부터 글로벌 시대에 대비,엔지니어들이 국경없이 서로 원하는 나라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 학력인정에 대한 불이익이 없도록 '학력 동등성'을 보장하는 협정을 맺었는데 이것이 바로 '워싱턴 협약'이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도 이 협약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기존 회원국이 워낙 엄격한 가입자격을 요구하고 있어 쉽지가 않다. 따라서 우리 정부 관련 부처들도 세계적인 대학교육의 변화와 흐름에 대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큰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