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2일 마련한 범죄 피해자의 보호.지원종합대책은 그간 등한시돼 온 범죄피해자 인권 문제에 국가가 이제라도 적극적으로나서야 한다는 자각이 담겨있다. "국민 누구나 범죄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 국가에 구조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헌법 제30조의 정신을 상기하면 `피의자 인권'에 치우쳐온 그간의 형사정책 방향이 균형을 잡게되는 계기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법무부는 이런 반성을 토대로 차제에 범죄 피해자의 `권리장전'이라고 할 수 있는 `범죄피해자기본법'을 제정, 피해자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규정하기로 했다. ▲ 피해자의 불신-신고율 저조 `악순환' = 지금까지 피해자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철저히 참여가 배제됐고 실효성없는 구조제도로 인해 피해자들의 불신과 실망만 누적됐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수사와 재판에 대한 피해자들의 비협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 재작년 한해동안 범죄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한 비율은 34.9%에 불과했는데 절도 신고율은 27.3%, 강도 신고율은 25.0%에 그쳤으며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한 여성의 경우에는 신고율은 0%에 가까웠다. 법무부 관계자는 "98년도 범죄 신고율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22.7%로 영국 58.7%, 프랑스 60%, 독일 48.0%에 비해 극히 저조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 등 제2의 피해를 입은 사례가 빈발, 피해 여성들이 아예 신고 자체를 꺼려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지난 87년 도입된 `범죄피해자구조제도'도 구조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지급되는 금액도 극히 적어 작년에 피해자들에게 지급된 지원금은 8억2천여만원에 불과했다. 배상명령제도 역시 형식적인 운영에 그쳐 피해자들은 "한번 당하면 어쩔수 없다"는 자조 속에 피해의 원상복구는 기대조차 못한 것이 사실이다. ▲ 피해 원상회복이 급선무 = 법무부는 무엇보다 피해자가 범죄의 피해로부터 빨리 원상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벌과금이나 몰수.추징금으로`피해자구조기금'을 설립해 피해자를 돕는 방안 등을 마련키로 했다. 또 형사재판 과정에서 합의가 성립될 경우 합의 내용을 공판조서에 기재하도록하고 이후 공판조서를 토대로 별도의 민사소송 절차 없이 강제집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형사재판상 화해제도'도 도입된다.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형사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의 책임 등이 인정돼도 배상을 받기 위해선 이와 별개로 민사소송을 다시 제기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고 과다한 소송비용은 국가적인 낭비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와함께 법무부는 각 검찰청에 `피해자 지원과'를 설치해 피해자에 대한 지원업무에 나서고 비영리 민간법인 형태의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설립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외국의 경우 70년대부터 미국의 NOVA(75년), 영국의 VS(79년) 등 피해자 지원센터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작년부터 김천, 대전, 울산 등에서 피해자지원센터가 설립.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법률구조법 등을 개정해 법률구조공단이 피해자를 위한 법률지원과 함께 경제적으로 곤궁한 피해자를 위해 배상명령 신청 대행 등의 업무도 취급하도록 해 배상명령제도가 활성화될 전방이다. ▲ 피해자도 `주인공' = 앞으로 피해자들은 형사사법 절차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고 제2의 피해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된다. 법무부는 피해자의 법정 의견진술이 일반화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 등 관련 조항을 개정, 진술권 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 규정을 신설하는 등 제도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피해자가 수사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한 경우 피해자의 법정진술권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진술배제 사유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규정해 헌법상 보장된 피해자의 진술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피해자가 피고인의 양형을 정하는 과정에서 피해내용과 양형에 대한 의견도 진술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자에게 공소사실의 입증과 무관한 내용에 대해서는 진술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재정신청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마련된 상태다. ▲"당한 것도 억울한데..2차 피해 막아라" =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당할 수 있는 제2의 피해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비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고소.고발인에 한해 기소 여부와 불기소 이유만 통지해왔지만 앞으로는희망하는 피해자에 한해 관련 공판의 진행상황 및 가해자의 석방 여부 등에 대한 정보를 통지받을 수 있다. 또 피해자 신문시 피해자가 현저한 불안감을 느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수사기관에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동석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법무부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 비디오 중계방식에 의한 증인신문도 가능하도록 제도화하고 피해자가 증언을 위해 법정에 출석했을 때 피고인 및 피고인의 주변인물들과 떨어져 있을 수 있도록 별도 공간에 대기실을 마련해 주는 방안도 모색중이다. 현행법에는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칠염려가 있는 경우'에만 비공개 재판을 인정해 왔지만 피해자나 증인의 인격권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재판 공개를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