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미국이 경제대국으로 군림하면서 이 세계를 리드해 나가는 원동력은 정상인은 물론 지체부자유자까지도 마다 않고 우리나라의 어린이를 입양,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인간미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민족과 인종으로 이뤄진 사회를 통합시키고 응집력을 발휘하게 하는 미국의 힘은 합리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 조직에서 각 직위별,단계별로 주어지는 재량권을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보통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우리같이 경직되고 유연성 없는 사회구성원이 꼭 배우고 넘어가야 할 교훈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몇 달 전 나는 노모와 언니를 모시고 한 달 간의 유럽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생전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왔을 때 사고가 난 것이다.

내 저금통장에 돈이 있었기에 신용카드로 사용한게 자동으로 인출되는 줄 알았는데,자동 인출이 되지 않아 10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던 것.깜짝 놀라 은행에 알아본 결과 내 실수였음을 알게 됐다.

원인은 신용카드를 만들 때 각 조항을 읽고 서명하는 항목이 있었는데,그 중에서 '당신이 신용카드로 사용한 전 금액을 당신의 예금 통장 계좌에서 자동적으로 인출하겠느냐' 란 질문에 "예" 하고 답한 줄 알았는데,'당신의 신용카드 사용금액의 10분의 1을 자동적으로 인출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이는 보통 한국 사람들이 어떤 계약조항을 자세히 안 보고 서명하는 버릇을 가차없이 처벌한 결과였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공부하러 떠났을 때 그곳에서 오래 사셨던 한 은사님이 한국 사람의 취약점 두 가지에 대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 중 하나는 한국 사람은 상대방의 질문사항을 정확히 듣지 않고 대충 듣고는 예스나 노를 쉽게 대답한다는 것이었으며,다른 하나는 약관이나 계약조항을 자세히 읽지 않고 서명해 후에 후회할 만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슈퍼바이저에게 나는 생전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았으며 그 조항이 카드로 사용한 전액을 자동으로 인출되는 항인 줄 알고 서명했다고 설명하니,그녀는 내 말을 1백% 믿고 10달러의 벌금을 면제해 주었다.

이 사건은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각 단계의 결정권을 가진 담당자가 상대의 실수임에도 나름대로 합리적 판단을 해 줌으로써 고객에게 감동을 부여하는 잔잔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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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필진이 9월1일부터 바뀝니다.

9∼10월 한경에세이를 써 주실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견 대한펄프 사장(월)=△59세△한양대 화학공학과△1989년 럭키 경영관리 이사△1993년 LG화학 경영·기획관리담당 상무△1999년 LG생활건강 생활용품사업부 부사장△2002년 LG MRO 사장

◆한광희 코오롱 사장(화)=△55세△72년 서울대 상학과△76년 코오롱 입사△77년 공인회계사 자격취득△94년 코오롱 인공피혁사업본부 이사△98년 코오롱 상무이사△98년 코오롱 대표이사 전무△2003년 코오롱 글로텍 대표이사

◆최순자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회장·인하대 교수(수)=△52세△75년 인하대 화학공학과,81∼85년 미 남캘리포니아대 화공과 석·박사,2002년 인하대 경영대학원 MBA△200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산자부 테크노포럼 21 여성기술인력 분과포럼 위원장

◆오경수 시큐아이닷컴 대표이사(목)=△48세△82년 고려대 경영학과△81년 삼성물산 입사△95∼98 삼성그룹 미주본사(뉴욕)정보총괄 부장△98∼99 에스원 정보사업 부장△2000년 시큐아이닷컴 설립△2004년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

◆윤성갑 아경산업 대표이사(금)=△58세△동아대 정치외교학과 졸업△73년 한진 입사△85년 태원 상무이사△93년 아경산업 창업△영화'흐르는 강물처럼(주연 로버트 레드퍼드)'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낚싯대 생산ㆍ수출

◆권순한 한국수입업협회 회장(토)=△61세△70년 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과△83년 소이상사 설립,㈜소이테크 대표이사,㈜포럼 건축설계사무소 회장△한국수입업협회 부회장·자문위원·연수원장 역임△한국외대 국제무역인클럽 총회장,서울북악로타리클럽 회장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