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桂燮 < 서울대 교수ㆍ경영학 >

최근들어 경제인들의 모임은 시작이 무엇이든 결국 한가지 주제로 모아진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볼때 앞으로 몇년은 버티겠지만 그 뒤에는 먹고 살 것이 없다는 걱정이다.내 힘만으로 경제를 살릴 수 없고, 정부도 경제인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이다.

경제인들의 사기는 최악이다. 그러면서도 얼마 안있으면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가 정신을 못차릴 경우 경제난이 가중돼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가정은 그럴 듯하게 들린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구호였던 "바보야,경제문제가 첫째야"가 우리에겐 들리지 않는다.

현 정부는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비경제적 문제에 집착해 경제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있다.

1961년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의 임기 첫해의 국정 주안점은 임기 전의 경기상황에 따라 좌우됐다.경기가 나쁠 경우 주안점은 경제 살리기에 놓였다. 경기가 좋으면 주안점은 정치개혁으로 흘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달랐다.

이미 경기하강이 진행되는 시기에 집권했음에도 경제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언론과의 전쟁과 사법부 개편에 나섰다.

탄핵 부결 이후 총선에서 국회를 장악한 후에도 경제가 최우선 관심사란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청와대가 수도 이전과 과거사 재정립 사업을 벌여놓은 마당에 여당 의원들은 경제 문제에 집중할 수가 없다.

아울러 정책집행의 시기를 놓치고 있다.

가장 비근한 예는 행정 개혁이다.

국무총리와 통일부 장관, 그리고 복지부 장관 3인이 행정부를 책임지는 헌정사상 최초의 분권 실험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다시 일부 정책을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와 국민들은 혼란에 빠져 있다.

행정 개혁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관료들은 사정 한파와 인사 이동을 걱정하며 복지부동에 들어가게 된다.

으름장이 먹혀 들어갈 집권 첫해가 한참 지난 뒤에 시작된 개혁은 가뜩이나 국민들과 재계의 요구에 무감각하다는 관료들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어놓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제정책 집행의 실기로 인해 경제난이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것같지는 않다.

다름아닌 우리 유권자들 때문이다.

우리들은 약점이 너무 많고 정치가들은 그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첫째, 유권자들은 하나의 이슈로만 투표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가들은 경제문제가 심화될 수록 관심사를 경제와 무관한 분야의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화한다.

경제난이 가중되더라도 외교 문제와 부정 부패 문제 등이 제기되면 유권자들의 관심은 분산되기 쉽다.

"경제 정책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이라는 심리가 발동한다.

둘째, 유권자들은 통계 숫자에 약하다.

집권 세력은 국가 경제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수십 가지의 지표중 유리한 것을 선택적으로 제시할수 있다.청년들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아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우리의 상황이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전년 동기 대비 개선치를 제시한다.

집권 초기의 경제 성적이 워낙 나빴을 경우 전년 동기 대비 수치는 대폭 높아지게 마련인데, 이럴 경우 '이 추세를 몰아주자'라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끝으로 투표는 항상 상대적이다.

여당이 무능하다고 반드시 야당이 유능하리란 보장은 없다.

지금 야당이 주장하는 경제정책도 여당에 비해 낫다고 말할 수 없다.

언론의 힘을 입은 여당이 경제난을 야당 탓으로 돌리는 것에 성공할 경우 정권교체는 요원해진다.

선거 당일 날에는 "정권은 밉지만 대안이 없으니…"라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이같은 추론을 우리 정치 현실에 대입해보자.그러면 왜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통령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곧 정권이 교체되고 정권이 교체되면 다시 한번 우리 경제는 특유의 역동성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헛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한번 빠진 포퓰리스트 정치의 덫에서 헤어나오기란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우리 국민이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이제 난국을 헤쳐갈 지혜를 서로 모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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