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홍 < 서울보증보험 사장 jung45@sgic.co.kr >

경기가 언제 회복될 것 같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경기 회복이 곧 본격화할 것으로 믿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본처럼 장기불황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비관론이 고개를 들자 정부에서는 언론이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킨다고 불만이다.

실상을 들여다보자.지금까지는 경기 회복을 위해 어김없이 아파트 건축붐을 조성하거나 건설경기를 부추겨 투자 수요를 유발했다.

또 주식시장 활성화 조치를 취한다거나 소비 진작책도 병행했다.

이러한 대증요법은 십수년 동안 마치 공식처럼 받아들여졌고 그때마다 경기는 회복기미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아파트 시장에서건 주식시장에서건 가진 자에게만 더 큰 부를 가져다 줬고,이것은 계속 사치성 과소비로 이어졌다.

서민층도 덩달아 모방적 과소비 대열에 끼어 '버블'인 줄도 모른 채 마치 경기 회복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양 착각하게 됐다.

과거 방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정부가 단기 처방을 내놓을 것을 압박하고 있고,정부는 차제에 과거의 기형적 성장방식 대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려 한다.

쌍방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사이 경기순환은 숨을 멈추고 있는 형국이다.

미래가 불확실하니 아무도 자신있게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은 외환위기 때의 경험을 교훈삼아 현금 보유에 주력할 뿐 설비투자에 소극적이다.

가계도 씀씀이를 대폭 줄이고 부유층마저 불안하니 돈을 움켜쥐고 있다.

여기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옛날식 단기 처방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국민에게 납득시켜,반짝 체감경기 회복보다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급선무라는 '컨센서스'를 구해야 한다.

또 하나는 시장개혁이나 형평정책이 성장을 희생하면서 얻고자 하는 정책목표가 아니란 사실도 확신시켜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금리 인하 조치는 시의적절했다.

기업도 정책의 불확실성만을 탓할 게 아니라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할 때다.

구조조정 등 '하드웨어'적 혁신을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면 이제는 경쟁력 강화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한 '소프트웨어'적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

여기에 기업가 정신이 발휘된다면 기업의 활력은 쉽게 되살아난다.

수출부문이 전례 없는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국민도 막연히 경기 회복에 조바심만 낼 게 아니라 일정부분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우리경제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체질 변화에 적응하면서 기업의 기를 살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는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단기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무서운 사람들이란 걸 잊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