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식 빼고 다 바꿔!"

오래 전 삼성그룹 간부회의에서 나온 이 말은 현행 방송제도 정책에 더 어울릴 듯 싶다.

방송기술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그것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관련제도와 정책은 여전히 뒷걸음질치고 있다.

그 이유를 파고들면 '공익'이라는 모호한 개념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정책 당국자들이 신앙처럼 숭배하고 있는 공익은 과연 무엇일까.

만에 하나라도 그것이 아날로그 시대의 전유물이라면 과감히 내던져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지상파DMB(디지털 멀티미디어방송)를 제외한 신규 방송서비스는 거의 모두 '유료'를 수익기반으로 삼고 있다.

광고시장이 무한히 팽창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 유료 방송서비스는 역설적이게도 다수를 위한 공익이 아닌 소수를 위한 공익이어야 한다.

당장 디지털TV나 DMB용 수신기를 살 수 있는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과시적 소비'든 '필요에 의한 소비'든 여유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신규 방송서비스에 가입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서비스질은 점점 높아지고 방송수신용 기자재의 가격은 하락하는 이중 혜택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시점에 경제력이 다소 뒤진 일반 대중도 별 부담없이 신규 방송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휴대폰의 진화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모든 소비자들이 이런 과정을 알아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규 서비스에 당장 가입하지 않고 규모가 형성된 시점에 가입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결코 적정시점은 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규 방송 서비스에 대한 정책은 온정적(규제완화)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방송 서비스가 시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사업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정책적인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일반 상품조차 시장에 처음 소개된 후 지속적으로 판매되는 경우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방송 사업은 공공재이자 규모의 경제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일반 상품보다 매몰비용이 크다.

사업 실패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셈이다.

방송 서비스가 민간에 의해 주도되기보다 국책사업 형식으로 추진된 이유다.

위성DMB 사업은 민간이 주도하는 방송사업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남다르다.

특히 DMB 기술 표준을 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성DMB 사업자인 TU미디어의 모기업이 SK텔레콤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적지 않다.

정부가 온정적인 정책을 펼치면 특혜 시비가 불거질 것이고 규제를 강화하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방송위원회의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서부터 난제를 풀 것인가.

방송 서비스의 핵심은 방송 콘텐츠다.

하지만 한국 방송시장은 제작부문을 수직적으로 통합해 온 중앙 지상파 방송사로 인해 신규 방송사업자가 방송콘텐츠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지상파의 제작부문을 분리시켜 방송채널 사업자로 전환시키고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유료채널을 통해 먼저 유통시킨 다음 광고를 주된 수익기반으로 한 지상파에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다수 방송사업자의 공존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실현 가능성이 요원해 보이는 만큼 지상파 콘텐츠의 공유 방법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즉 방송사업자들(SBS와 경인방송,케이블TV,스카이라이프 등)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힌 지상파 재전송 문제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갈 때다.

신규 매체를 통해 다양한 방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방송정책의 목표라면 어떻게든 신규 방송서비스사업자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상파 재전송도 이러한 관점으로 접근할 때 좀더 신축적일 수 있다.

예컨대 동시 재전송이 아니라 시차를 둔 재전송이라든지,편성을 달리한 재전송 등이 고려될 만하다.

채찍은 나중에 들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