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의 아시안컵 축구 결승전이 벌어진 지난 7일 밤 베이징의 궁런(工人)체육관.일본 국가가 먼저 연주됐다.

하지만 들을 수 없었다.

일본 국가가 끝날 때까지 중국 응원석에서 '우'하는 소리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중국팀이 1-3으로 패한 직후 큰 불상사는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중국 축구팬의 모습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던 것으로 보도됐다.

경기장 밖에 무리를 지어 일장기를 불태우고 일본 선수단이 탄 버스를 둘러쌌다.

때문에 일본 선수와 응원단은 한때 발이 묶였다.

응원단은 경기종료 2시간이 지나서야 대사관측이 마련한 20여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경기장을 떠났다.

선수단도 무장경찰 호위 하에 경기장을 나섰으나 중국 군중이 던지는 페트병 때문에 다시 몸을 피했다가 나중에야 숙소로 출발했다.

경기장을 빠져 나오던 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 공사의 승용차 뒷유리창이 중국인이 던진 물건에 맞아 깨지기도 했다.

일본 대사관은 중국 외교부에 공식 항의했다.

곳곳에 배치한 무장경찰 등 공권력도 중국 일부 팬들의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에서 드러난 건 중국인의 단순한 패자로서의 울분이 아닌 강한 반일감정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중국인의 쌓인 반발심이 스포츠경기를 통해 표출됐다는 지적이다.

이 대목에서 고구려사 왜곡 시정을 요구하기 위해 최근 베이징을 방문한 한국 정부대표단에 "고구려사 문제가 한국의 정체성에 영향을 줄 걱정거리가 아니다"며 이해를 구한 중국 공산당과 외교부 고위 인사들의 발언이 오버랩된다.

중국과 일본의 축구경기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그렇게 흥분하면서 자신들의 고구려사 왜곡은 이상할 게 없다는 중국의 이중적인 역사 잣대를 드러낸 현장이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