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나 개인자산 투자처로서의 기능을 모두 잃어가고 있다.

이는 한국 증시가 대외 변수에 취약해 변동성이 크고 외국인 투자자에게 주도권을 빼앗겼기 때문으로, 당분간 뚜렷한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많다.

◆ 우량주 공모에 기관 인수 포기 속출

코스닥 등록예정 기업 코아로직은 지난 4일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를 마감한 결과 최종 청약 경쟁률이 0.89대 1에 불과, 지난 2002년 10월 모닷텔 이후 22개월여만에 처음으로 청약미달 사태를 맞았다.

앞서 시장수요예측에 참여한 하이일드펀드(고수익.고위험 펀드)들의 청약률이 22.5%에 그치면서 이들 기관의 실권 물량이 대거 일반 투자자 공모분으로 배정됐기때문이다.

코스닥위원회 관계자는 "시장예측에 참여한 기관들의 청약 포기가 직접적 원인이 됐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황 악화로 투자자들이 모두 물량 부담을 피하려 하기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 정보기술(IT)업체 LG필립스LCD의 최근 공모 과정에서 기관들이 대량 실권한 것도 기업공개(IPO)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한.미 동시상장으로 주목받던 LG필립스LCD의 경우 공모가가 희망가 범위의 최하단에서 결정됐음에도 국내 공모 결과 하이일드 펀드들이 대거 물량 인수를 포기, 전체 공모물량 814만주 중 40%가 일반투자자들에게 떠넘겨졌다.

코스닥증권시장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공모를 통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액은총 2천351억5천만원(26건)으로 작년의 2천897억7천만원(43건)에 비해 건수로는 39.53%, 금액으로는 18.85% 급감했다.

◆ 유상증자 줄고 자사주 취득만 활발

이처럼 상장 또는 등록 전부터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은 증시 입성 후에도 경기 및 시황 불안에 원활한 자금 조달을 기대할 수 없는형편이다.

오히려 증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보다 주가 관리 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자사주 취득에 쏟아붓고 있다.

증권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이뤄진 상장기업들의 유상증자는 모두 5천345억원으로 작년동기의 7천94억원에 비해 24.66%나 급감했다.

이에 비해 상장기업들은 올 들어 같은 기간 3조335억9천만원 규모의 자사주를취득, 그 규모가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액의 6배를 넘어섰다.

거래소 상장기업들의 증자 감소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이익창출과 풍부한 자금력등으로 증자 필요성 자체가 크지 않다는 점이 감안될 수 있지만 자금 여력이 빈약한코스닥시장의 상황은 보다 심각하다.

등록기업 한국스템셀은 지난달 19~20일 이틀에 걸쳐 청약을 받아 일반공모 방식의 1천만주 규모 유상증자를 시도했으나 단 한주에 대해서도 청약이 이뤄지지 않아실패했다.

포이보스도 지난 6월 24~25일 332만5천490주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실시했지만역시 전량 청약 미달 사태를 빚었다.

◆ 개인투자자 이탈 17개월째..수익률도 바닥

증시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로서의 기능 뿐만 아니라 '투자처'로서의 매력도 상실한 지 오래다.

LG경제연구원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투자자산별 수익률 비교에서 주식(종합주가지수 기준)은 -3.1%로 회사채(4.2%), 국고채(3.9%), 토지(전국지가지수기준 2.5%), 주택(주택매매가격지수 기준 1.2%)에 이어 분석대상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개인들의 증시탈출 현상도 이달로 1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LG투자증권에 따르면 개인자금의 유출.입분을 반영하는 실질예탁금은 이달 들어서만 1천868억원이 줄어 작년 4월 이후 17개월 연속 순유출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16개월간 개인들이 증시에서 빼간 자금만 13조3천억원을 넘어섰다.

주식 매매에 따른 개인 투자 자금의 증감분까지 모두 반영하는 고객예탁금 역시지난 5월말 8조원대로 내려 앉은 후 지난달 20일에는 18개월여만에 7조7천억대까지줄었고 최근까지 줄곧 7조7천억~7조8천억대에 머물러있다.

또 개인투자자들은 지난해 4월 이후 지난달까지 16개월간 3개월을 제외하고 계속 순매도를 기록했고 기관투자자들도 지난해 6월 이후 14개월간 올 6월 단 한달을빼고는 매도우위 기조를 지키고 있다.

주식시장의 거래규모도 급감해 거래소시장의 일평균 거래량과 거래대금은 이달3억1천493만주와 1조4천564억원으로 작년 12월의 4억3천697만주, 2조4천443억원에비해 각각 28%, 40%나 줄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투자를 기피하는 기업들과 증시를 떠나는 개인으로 인해증시의 자금조달 기능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면서 "반면 외국인투자자의 지분과 영향력이 높아져 배당, 주가관리 등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증시내 자금 소요는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최근 고유가, IT경기 하강 우려 등으로 국내 증시가 수개월째 정체상태를 맞고 있다"면서 "경제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개인과 기관이 증시로 복귀하지않는한 `자금조달-설비투자-기업성장-주가상승`의 선순환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문성.김상훈.신호경기자 kms1234@yna.co.kr meolakim@yna.co.kr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