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합성염료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원료인 '아닐린'(aniline)을 급성 백혈병의 발병 원인으로 보고,이 물질을 취급하는 일에 종사하던중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처음으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 동안 아닐린은 역학적 연구를 통해 급성 백혈병을 유발한다는 충분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를 판단할 때 급성 백혈병의 발병 원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아닐린과 급성 백혈병의 인과관계를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앞으로 화학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유사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한기택 부장판사)는 23일 염료공장에서 오랜기간 아닐린이 함유된 염료제품을 다루다 백혈병으로 숨진 심모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제암연구기구(IARC)에 따르면 아닐린이 암을 유발하는 가능성에 대해 동물실험에서는 충분한 증거가 있는 반면,역학적 연구에서는 충분한 증거나 자료가 없는 것으로 분류돼 있다"며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아닐린을 발암성 물질로 보고 있으며,아닐린 염색 작업자들에게서 암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심씨가 아닐린이 함유된 물질을 원료로 해 오랫동안 염료 생산 작업을 해온 사실을 고려할 때 업무중 사용한 아닐린이 체질 등 다른 요인과 함께 급성 백혈병을 일으켰거나 적어도 발병을 촉진한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