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의 역할에 관한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부총리는 지난 14일 여성경영자총협회 강연에서 "경제발전의 주역인 386세대가 정치적 암울기를 거치면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책임회피 발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386세대인 임종석 의원(열린우리당)은 "대기업의 허리를 담당하는 간부들이 모두 386세대"라며 "경제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습도 봐달라"는 당부도 했다.

박형준 의원(한나라당)은 "사회적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리더십 부재가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 각료였던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한서대 초빙교수)은 인터넷에 장문의 반박문을 올렸다.

이 전 장관은 경제정책의 최고책임자가 책임을 386세대에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여 어이없다고 썼다.

그는 현재의 재정금융정책으로는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없다며 산업정책을 살리라고 충고했다.

386세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6079'(60년생 79학번)인 필자는 대학시절 '10.26'과 '5.18'을 경험한 386세대다.

그렇지만 부총리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몰아붙이고 싶진 않다.

'리더십 부재'가 더 문제라는 얘기나 '산업정책을 살려야 한다'는 지적에도 동감하지만 부총리의 얘기에는 곱씹어볼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임종석 의원 말대로 현장에서 땀 흘리는 386세대도 있다.

하지만 부총리의 발언이 대기업 간부가 됐거나 현장에서 땀 흘리는 386세대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좀더 넓게 생각해보고 싶다.

첫째,'정치적 암울기'를 거쳤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386세대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에 대해 무의식적인 반발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386은 대학시절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억눌린 자'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며 데모를 했던 세대다.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386이 정권에 합류한 후 균형과 분배 중심으로 정책기조가 잡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기업 간부가 됐거나 현장에서 땀 흘리는 386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현장에서 보면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기업의 부채가 국가와 개인으로 옮겨졌을 뿐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둘째,부총리의 말에는 386세대의 이분법적 사고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의미도 함축됐다고 생각한다.

대학 캠퍼스가 사시사철 최루탄 냄새로 진동했던 시절엔 정의와 불의만 있었다.

이런 사고에 익숙해진 386세대는 경제현상에 대해서도 정의와 불의란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어디 그런가.

경제정책은 선택의 문제이지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문제를 선악 개념으로 풀다 보면 꼬이기 십상이다.

접대비 규제만 봐도 그렇다.

선악의 개념으로 보면 한시라도 빨리 규제해야 옳다. 그러나 선택의 문제로 보면 제도 도입 시기를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심리가 회복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에 규제를 강화해 짓밟을 이유는 전혀 없다.

386세대의 역할에 대해 얘기한 것은 부총리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해서 경제수장이 386세대에 화살을 돌린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부총리는 경제정책을 틀어쥐고 끌어가는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와중에 '이헌재 흔들기'란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