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7월 중 51개 대기업집단의 대주주와 친인척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지분을 촌수별로 구분해 공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이 조치의 근거를 찾을 수 없고 신상 정보의 공개를 금지하는 정보공개법,금융거래의 비밀을 보장하는 금융실명법에도 배치돼 법적 시비를 유발하겠지만,그보다 친인척 지분을 공개하는 목적이나 방법론에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법에서 기업에 대해 어떤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거나,정부가 스스로 공개하는 예가 많은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보의 공용성 때문이다.

예컨대 증권거래법에서는 상장회사의 내부정보를 샅샅이 공개하도록 하는데 이는 투자자들의 투자결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보 자체가 누구에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해당 기업의 행동을 대중의 비판에 노출시킴으로써 기업의 부당한 행동을 응징하거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함이다.

어느 경우이든 정보공개로 인해 초래되는 당사자의 불이익이 고려돼야 하고 이를 상쇄하고 남을 공익적인 불가피성이 있어야 한다.

공정위가 내거는 친인척 지분공개의 명분은 투자자들의 투자판단을 돕고 기업에 대해서는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증권거래법에서 친인척을 대주주의 특별 관계자로 분류해 그 지분을 공시하도록 하고 투자자는 누구나 이 정보에 접할 수 있는데 같은 정보를 다시 공정위가 공개한다고 해서 투자자의 보호가 두터워질 리는 없다.

이에 앞서 정보공개를 통한 증권투자자의 보호는 독점금지를 사명으로 하는 공정거래법의 영역이 아니고 이 법을 집행하는 공정위의 소관도 아니다.

같은 정부가 하는 일인데 어느 법에 의하건 어느 기관이 하건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법에 근거해 누가 하느냐가 행정의 전문성과 책임성 그리고 정당성을 보장하는 데 있어 극히 중요하다.

소관 법률과 기관이 적정하지 못하면 행정의 목적이 왜곡되고 수단의 적절성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경찰서장이 증권투자자의 보호를 위해 자신이 수집한 기업비밀을 공개하는 것이 옳을 수 없음과 같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한다는 것도 공정위가 주관하는 한 이치에 닿지 않는다.

흔히 공정위를 축구심판에 비유한다.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심판이 선수들의 반칙을 저지하듯이 공정위는 부당한 경제행동을 단속해 기업간 공정한 경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축구심판은 축구팀의 감독이 무능하다거나 구단주가 독선적이라고 해서 벌점을 주지는 않는다.

심판의 임무는 단지 잔디밭에서 펼쳐지는 경기에 주목하는 것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란 해당기업이 선택하는 것이고 바로 그 기업의 경쟁력을 이루며,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는 그 기업이 대가를 치르면 족하다.

공정위가 기업을 다그쳐 지배구조를 바로 세우게 함은 심판이 무능한 감독을 교체하라고 독려함과 같다.

잘못된 지배구조로 인해 도태하는 기업이 있다면 이를 교훈삼아 다른 기업이 스스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시장논리이고 잘못된 지배구조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망하지 않는다면 그 지배구조는 나름대로의 효율성을 갖춘 것이니 정부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공정거래법은 냉엄한 적자생존의 논리로 기업을 경쟁시키는 법률이지 낱낱의 기업을 지도·육성하는 법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한편 친인척 지분을 공개하면 지배구조가 개선될 것이라는 믿음은 지분공개가 대주주의 불명예로 여겨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는 친인척 지분의 공개를 통해 옥석의 가림없이 대주주에 대한 비난여론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풀이되기에 정책의 도덕적 흠이 돋보이는 것이다.

끝으로 친인척을 촌수로 구분해 공개하겠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투자자를 돕겠다거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명분론으로도 설명되지 않으려니와,정부의 품위를 손상하는 소치가 아닐 수 없다.

공정위의 숙고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