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고객(non-customer)'은 새 시장 창출전략인 가치혁신(Value Innovation)론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고객이 아닌 집단을 뜻한다. 비고객의 움직임에 주목하면 거대 잠재수요가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낼 수 있다고 가치혁신론은 주장한다. 기업들이 새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때 보통의 경우는 고객군에 집중한다. 타깃이 되는 사람들을 골라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거기에 가장 가까운 아이템을 시장에 내놓는 게 목표다. 그러나 기존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은 기껏해야 점진적인 개선에 불과하다. 진정한 혁신은 지금은 없는 새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고 비고객이 왜 비고객이 됐는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혁신의 가닥도 잡을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비고객에 집중할 때 그 성과가 훨씬 높아진다. 산업정책의 비고객은 누구인가.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는 기업이 대표적인 비고객이다. 지금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들이 해달라는 것에만 정책을 맞출 경우 하나씩 규제를 푸는 점진적인 개선에 불과하게 된다. 이것도 나쁠 것 없지만 기업의 중국행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왜 중국에 가려하는가를 묻고 그들을 붙들어둘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줘야 비고객을 다시 고객으로 잡을 수 있다. 비고객의 움직임이 이렇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비고객이 늘어나는 현상까지 바람직한 것은 절대 아니다.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만족시키는 노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특히 정부 혁신의 경우 방향을 잘못 잡으면 비고객을 양산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예를 들면 공정위가 규제를 강화하면 산자부의 고객인 대기업들은 비고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갈등을 조율하는 정치의 몫이 중요하지만 정치는 여전히 3류 수준이다. '3류 정치' 때문에 안그래도 국민 가운데 비고객,즉 비국민이 날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단기간에 엄청난 비고객을 만든 사건이 생겼다. 바로 김선일씨 피살 사건이다. 사건을 전후한 정부의 행태를 보고 '믿을 수 없는 정부'라는 비난을 쏟으며 많은 이들이 한국 국민임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파병에 관해서도 찬반양론이 극심하게 갈리며 두 집단 모두 비고객화되는 국론분열의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혁신은 고사하고 기업으로 치면 존폐의 위기에 몰리는 엄청난 사건이다. 정부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는 방식을 보면 이미 실망할 대로 실망한 비고객들의 마음을 돌릴 의지가 없어보인다. 감사를 통해 책임소재를 가려내 희생양을 만들어가는 행태가 그렇다. 비유될 만한 사례를 보자.지난 82년 시카고에서 정신병자가 투입한 독극물이 들어있는 타이레놀을 먹고 8명이 사망한 사건이 생겼다. 35%가 넘던 시장점유율이 7%대로 급락했고 전세계적으로 타이레놀 불매운동까지 번졌다. 제조사인 존슨앤드존슨에 미국식품의약국(FDA)이 내린 권고는 시카고지역에 유통된 타이레놀 폐기였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슨은 2억4천만달러를 들여 미국에 유통된 모든 타이레놀을 수거,폐기했다. 타이레놀을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비고객들도 이 회사의 이런 결정에 찬사를 보냈다. 타이레놀이 예전의 자리를 찾는 데는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 책임'이라고 나서는 지도자가 한 사람도 없는 현실에서 이미 비고객이 된 사람들의 마음은 돌릴 길이 없다. 고객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기업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남은 고객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경영자가 있을까. 비고객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혁신이란 애당초 무리한 주문이었나.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나날들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