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쌓였던 해외 공관과 외교관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성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번 사건이 '이라크'라는 특수상황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 재외국민에 대한 보호 및 서비스 자세가 안돼있는 우리 공관 외교관들의 고질적인 폐단에서 비롯됐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해외업무 및 여행이 잦은 상사주재원들과 기업인들은 인터넷에 본인들이 해외에서 직접 겪은 재외공관 직원들의 무능과 무성의를 성토하는 글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외국민 보호업무에 소홀한 외교관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티즌 성토 '봇물'=25일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정부의 외교력 부재와 대응미숙을 비난하는 수백건의 글이 올라왔다. 장어진씨는 "단 70명의 교민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외교관의 능력은 유치원생 보모보다 못하다"며 "20일 간 실종됐는데도 알 자지라 등 언론에서 떠들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느냐"고 꼬집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는 무역업이나 해외근무가 잦은 네티즌들이 재외공관의 문제점을 꼬집는 글들도 올라왔다. 무역업에 종사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40대 사업가 A씨는 네이버에 올린 글에서 지난 4월 중국 산터우(汕頭)에서 현지 무역회사와 거래를 하던중 상담이 결렬되자 상대 회사 직원들에게 물품을 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소개했다. 중국경찰이 왔으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자 A씨는 주중 영사관에 전화했다. 그러나 영사관 직원은 "중국에서 조심하시지 왜 그렇게 하고 다니느냐. 우리가 도와줄 게 아무것도 없다. 영사관의 도움을 원하면 공식적으로 문서를 작성해 보내라"고 답했다고 A씨는 전했다. ◆해외비즈니스맨들도 비판 일색=K여행사 J부장은 "교민들 사이에서 재외공관 직원들은 행사 때만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며 "공관이 왜 필요하냐는 불평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그는 "일례로 9·11 미국 테러 즈음에 대사관에서는 업체와 개인들에게 '테러가 있을지 모르니 주의하라'는 공문만 한 장 팩스로 보낸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J여행사 K팀장은 "해외에서 사건이 터졌을 때 외교통상부는 여행자제 지역에 관한 안내문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게 대책의 전부"라고 꼬집었다. T여행사 L팀장도 "최근 한 사람이 파리호텔에서 강도를 당해 공관에 연락했는데 직원이 나와보지도 않아 결국 피해자가 직접 경찰서에 가 사건처리를 했다"고 전했다. 김태환 용인대 교수(경호학과)는 "한 해 동안 해외로 출국하는 국민이 5백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김선일씨 사건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외공관 직원들의 근무시스템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직무유기 외교관 처벌 법규 만들어야=지난 98년 호주에서 이민수용소에 수용됐다 한국으로 추방된 서재오씨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한벗종합법률사무소 서순성 변호사는 "제2,제3의 김선일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직무를 유기한 외교관의 처벌 등 관련법 제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지난 2001년 중국에서 처형당한 신모씨의 경우 우리 공관이 신씨가 체포됐을 당시 신원확인조차 하지 않고 이후 재판 상황도 점검하지 않아 '망신외교'라는 비난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