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균형'이니 '지방혁신'이니 하는 구호가 참여정부의 코드인 양 느껴진다. 이와 관련된 위원회,태스크포스만도 서너개는 된다. 거기서 첫번째로 로드맵이 나왔다. 균형발전 5개년계획이란 것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중앙에 있는 공공기관을 전부 지방으로 분산 배치하고 지방마다 이들 기관을 중심으로 교육,연구 등을 포함한 미래형 첨단도시를 만든다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산업클러스터를 만들고 또 인구 2만명 정도의 혁신신도시가 10∼20개 만들어진다. 충청권에 만든다는 행정수도로 여론이 뜨겁다. 그 옆에 아산신도시를 만들고 있다. 수도권에는 판교,동백,화성,김포,광명,파주에 위성신도시를 만든다. 지방에는 10여개의 혁신도시를 만들고 재계에서는 기업도시를 만들겠다고 한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마저 나서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빅딜프로젝트화하자는 즉흥적 제안을 했다. 기업도시란 민간에게 토지수용과 용도변경 그리고 개발이익을 허용하는 것이기에 신중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갑작스레 국토 정책의 비전이 혼란스러워졌다. '신도시'는 지도 위에 아무데나 점 찍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전국에 분양되지 않은 택지나 산업용지가 널려 있다. 그리고 우리의 중소도시는 황폐해져 있는데 이것을 버려두고 그 옆에 신도시를 만든다고 경제성이 있겠는가.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을 따져보면,행정수도를 옮기면 수도권의 과밀이 해소되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내면 이것이 지방발전의 동력이 된다는 논리다. 도대체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간다고 그 지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과거 몇몇 중앙기관을 강제로 지방에 이전했다가 실패,다시 서울로 재이전한 사례도 있다. 지금 대전에 제3청사가 행정타운을 이루고 있지만 얼마나 수도권 집중 억제에 도움이 되고 지방발전에 동력이 되었는가. 지금도 지방도시에 가보면 으레 번쩍번쩍하고 광나는 건물은 무슨 청(廳),무슨 서(署),무슨 국(局)자가 붙은 관청건물이다. 이런 것이 두어개 더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서울에서 밀려나온 공공 또는 행정기관은 아닐 것이다. 바로 경제와 산업기능이다. 고용을 창출하고 소득을 높여주고 연관산업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기능이다. 수도권 과밀 때문에 행정수도를 옮긴다고 하면서 지난달 수도권의 공장총량을 늘려 주고 대기업 공장을 대량 허가해 주었다. 정부의 변명에 따르면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수도권달래기 '빅딜'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수도권의 고용창출 효과가 8만명가량 된다. 단순한 산술만으로도 행정기능을 빼내고 경제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거꾸로 가는 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전국에 고루 첨단도시가 분포되고 실리콘밸리가 곳곳에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균형발전'이 꼭 '평등발전'을 뜻하지는 않는다. 지금 중앙에서 도시마다 곳곳에 기능과 역할을 '평등'하게 분배하고 공공기관도 '평등'하게 나눠주겠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지방은 지방 나름대로 경제기능을 유치하고 키우기 위한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한다. 수도권의 과밀로 고민해 온 영국,프랑스,일본도 모두 산업기능의 분산이란 정책이 일관돼 왔다. 장기적인 국토계획의 틀 속에서 인구의 이동이 예측되고 산업이 분산되고 이에 소요되는 사회간접자본의 비용 등을 따져보며 정책이 나와야 한다. 행정수도와 경제수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동북아의 중심이 된다는 수도권에 비해 공공기관 몇 개씩 나눠 가진 지방이 과연 실리콘밸리 같은 모습을 갖출 것인지.아무래도 지방과 수도권의 '상생'이란 말이 너무 허황되게 들린다. 정부 차원에서 대학(지금 수도권에 있는 국립대학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은행,한국전력 등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는 기구부터 분산시키는 것이 옳은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죄 많은(?) 재벌총수를 청와대로 불러 겁주기보다 경제기능의 지방분산을 위한 빅딜부터 했으면 한다. /전 국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