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한 나라의 문화역량을 나타내는 핵심콘텐츠 산업이자 원소스 멀티유즈에 의한 고부가가치 창출 산업이다. 세계 영화시장은 매년 7∼10%씩 성장하고 있다. 영화는 또 관객의 정서뿐만 아니라 각종 간접광고를 통해 상품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산업이 21세기 핵심 전략산업 중 하나로 꼽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1969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던 우리 영화계는 90년대 중반부터 재도약했다. 97년 4천7백52만명이던 관객은 지난해 1억1천만명,관객점유율은 25.5%에서 53%,전국의 스크린 수는 99년 말 5백99개에서 지난해 8월 현재 1천80개로 늘었다. 국내 영화산업 시장규모는 약 4조4천억원. 좋은 일이 있으면 문제도 생기는 법.98년 한.미투자협정(BIT)의 조건으로 거론됐다 영화인들의 반대로 무산됐던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본격적으로 재론되기에 이르렀다. 스크린 쿼터는 외국영화의 국내시장 지배를 막아 한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 제도.67년 생긴 뒤 한동안 유명무실했다. 한국영화 제작과 외국영화 수입을 겸하던 영화사와 극장 모두 수익성 좋은 외국영화를 선호했기 때문. 그러나 85년 외화 수입이 자유화된데 이어 88년 할리우드 직배사가 진출하면서 문제는 달라졌다. 직배사의 외국영화만 선호하는 극장과 영화사측의 이해가 상충됐던 것이다. 때문에 영화사는 극장에 뱀을 풀고,극장쪽에선 제도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현재 스크린쿼터제에 의한 한국영화 의무 상영일수는 1백46일(40%).미국측에서 요구하는 건 절반 수준인 73일(20%)이다. 하루 속히 축소하거나 조정해야 한다는 쪽의 견해는 국산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 상태에서 한ㆍ미투자협정의 걸림돌인 스크린쿼터를 계속 고집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조정 방침을 밝혔고 이에 대해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는 다시 전면 투쟁을 선언했다. 영화계의 주장은 이해할 수 있다. 문화는 교역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이다,국내 영화계가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기반면에서 아직 취약하다,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가 줄면 제작편수가 줄고 그렇게 되면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한국영화가 다시 주저앉고 따라서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도 충분히 일리있다. 스크린쿼터제가 제작자본 유치와 제작편수 확보,다양한 영화 제작이라는 영화 발전의 선순환구조 형성에 기여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발전은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변화,시장지향적 제작경향,인적자원 확대,기술수준 개선,유통구조 강화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한국영화의 앞날 또한 얼마나 좋은 영화를 만드느냐에 달렸다.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시기와 폭이 문제일 뿐 언제 닥쳐도 닥칠 일이다. 경쟁력은 보호막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실적 필요에서 생긴다. 절대불가만 고집하기보다 영화산업을 보호 육성시킬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의무상영일수의 마지노선을 확보하고,영화진흥금고 재원 확보,미국 내 유통망 확보 등을 요구하고 비상업적 영화를 살릴 방안을 요구하는 게 그것이다. 타협은 곧 패배라는 인식을 버리고 다양한 소재,탄탄한 시나리오의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조폭을 내세운 황당 엽기 코미디나 사회성을 앞세운 폭력물로 할리우드와 승부할 순 없다. '할리우드에서 중시하는 건 합리 절차 규칙인데 충무로에선 여전히 정실이 작용한다'는 얘기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환경은 상수가 아니라 변수고,진보란 도태되지 않으려 애쓰는 가운데 이뤄진다고 한다. 문화다양성 확보와 해외수출 증가도 당면과제다. 모든 건 콘텐츠에 달렸다.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