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도 바쁜데…." 대표적 강성 노조에서 9년째 무분규 사업장으로 변신한 현대중공업 노조 이경철 기획부장은 변화의 배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싸울 시간이 없어 싸우지 못한다"며 웃었다. 그는 이어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은 이제 실익이 없고 조합원들도 그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노사 갈등은 시대착오적 현상이 된지 이미 오래"라고 잘라 말했다. 이경철 기획부장의 설명처럼 노사 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병원노조, 화물연대, 금속노조 등 일부 대형 사업장 노조들이 파업을 하거나 파업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화합 쪽으로 급속히 바뀌는 추세다.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강경투쟁은 노조 몫을 늘리기보다 일자리를 잃게 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노조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노동부 박종선 노사조정과장) 올들어 나타나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임금 동결과 무파업 선언. 노동부에 따르면 5월 말까지 2백35개 사업장이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백79개 사업장에 비해 3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사상 최대실적을 올린 포스코도 포함돼 있으며 통일중공업 태광산업 영창악기 등과 같이 과거 파업으로 홍역을 치렀던 기업들까지 명단에 올라 있다. 항만 물류를 좌우하는 항운노조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4월 수출입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산업평화 선언을 했다. 일부 조합원들의 반발이 없지 않았지만 가뜩이나 흔들리는 경제가 파업 때문에 또다시 위협받아서는 안된다는 정서가 대세를 이뤘다. 노사 상생의 분위기는 회사측과 교섭에 나서는 노조 대표들의 외양에서도 나타난다. 90년대 중반 강성 사업장으로 분류된 애경유화 노조는 작년 6월 노사평화 선언을 하면서 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투쟁조끼'를 벗어던졌다. 이종환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성장해야 근로자에게 돌아오는 파이도 커진다"며 "올해는 생산성 향상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변화의 움직임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리는 울산지역에서도 감지된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협상 결렬을 선언, 여전히 투쟁노선을 견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이 갈등관계를 청산하면서 불법 분규와 공권력의 충돌로 전역이 포연(砲煙)에 휩싸이던 2~3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윤기설 노동전문ㆍ하인식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