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항쟁'이 10일로 17주년을 맞는다. 그렇게 흐른 세월 만큼 세상도 크게 바뀌어 당시 거리에서 민주항쟁을 주도했던이른바 `운동권' 인사들이 이제는 제도권 주역으로 확실하게 변신했다. 6.10 항쟁이란 87년 당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체육관 선거'를 유지하겠다는 소위 `4.13 호헌(護憲)'을 선언한데 맞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시민과 학생들이 거리투쟁을 벌여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민주화 운동이다. 특히 김영삼(金泳三) 정부 출범 이후부터 제도권으로 속속 편입되기 시작한 6.10 항쟁의 주역들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어느새 정치권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6.10항쟁 주역 중 유명을 달리하거나 김영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등 은퇴한 정치인을 빼면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부산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한 노 대통령은9일 항쟁 관련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6월 항쟁의 감동을 되살리며 극복했다. 저는 6월 항쟁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유세과정에서는 "6월 항쟁 다시 한번 하고 싶다"며 눈물을 비쳤을 만큼 `늦깎이 운동권'으로서 이 항쟁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이해찬(李海瓚) 총리 지명자도 당시 전국 단위의 항쟁 지도부 성격을 가졌던 국본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한 재야파의 핵심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17년 전 투사들이 국가경영의 최고 지도급 인사로 변모한 셈이다. 특히 17대 총선에서 큰 폭의 물갈이가 이뤄지면서 당시 거리투쟁의 전면에 섰던`386 학생운동권' 출신의 도약도 두드러지다.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인 열린우리당 임종석(任鍾晳) 대변인과 2기 의장이었던오영식(吳泳食) 의원은 16대에 이어 연거푸 원내 진출에 성공, 벌써 재선이다. 항쟁 당시 학생운동을 총지휘한 이인영(李仁榮.우리당) 전대협 초대의장도 원내에 진출했으며 연세대 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禹相虎) 의원도 역시 우리당 티켓으로국회의원이 됐다. 84년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고진화(高鎭和.한나라당) 의원과 85년 전남대삼민투 위원장이었던 강기정(姜琪正.우리당) 의원, 88년 2기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으로 활동한 백원우(白元宇.우리당) 의원, 89년 명지대 총학생회장 출신이자 전대협동우회장을 지낸 복기왕(卜箕旺.우리당) 의원 등도 넓게 보면 6.10 학생운동 세대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李光宰.우리당) 의원과 안희정(安熙正)씨도 모두 83학번으로서 이 세대로 분류할 수 있으며 청와대내에서도 비서관.행정관급에도 6.10 세대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비록 낙선했지만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허인회씨는 우리당 청년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원내 진입의 꿈을 접지 않고 있다. 우상호 의원은 "6.10 항쟁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획기적 전환점이었다"며 "그때의 정신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 정치는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고일환 기자 uni@yna.co.kr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