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성 < 우리증권 사장 pslee@woorisec.com > 지난 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김추자의 히트곡 중 '커피 한잔'이란 유행가가 있었다. 그 노래에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라는 노랫말이 있는데,데이트 약속에 늦는 남자를 10분까지만 기다려주겠다는 여성의 초조한 속내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그 당시의 생활상과 남녀 사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요즘이라면 어떨까? 집을 나서면서부터 휴대폰으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우주선이 랑데부하듯이 정확하게 만나고,데이트가 끝나면 집에 잘 들어갔는지까지 확인하는 신세대 연인들에겐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생까지 갖고 다니는 휴대폰으로 우리의 삶은 30여년 만에 가히 상전벽해가 무색할 정도로 바뀐 것이다. 길을 걷거나,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휴대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전화를 하고 있거나,전화가 오지 않아도 만지작거리고,문자를 주고 받고,그도 아니면 그 조그마한 액정화면에 빠져들듯이 게임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일상이 주는 조그마한 기다림의 미학도,인내의 단맛도 손 안의 휴대폰 속으로 함몰시킨 듯하다. 사실 지하철 안의 그 어색한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기보다는 지인들과 연락을 하거나 잠깐 놓친 어떤 일들을 확인하는 것이 보다 의미 있고 효율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당연시 되면서 혼자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들이 조금씩 줄어들게 되고,이 과정에서 삶의 질이 조금씩 강퍅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조그마한 불편에도 화를 내거나,사소한 시빗거리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친다든지,살아가기 어렵다고 극단적인 결말로 가는 등의 요즘 세태가 이와 무관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최근 일부 사람들이 휴대폰 대신 호출기(삐삐)를 다시 찾는다는 기사를 봤다. 내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통화해야 되는 휴대폰 대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음으로써 생기는 즐거운 고독감과,부가적으로 통신요금도 줄어들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호출기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가끔씩은 휴대폰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해 지내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 짧은 칩거가 단비처럼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적셔줘 한결 부드럽고 여유로운 삶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