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확산 중인 반(反)국민연금 정서가 국민연금 폐지론으로까지 악화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예상밖의 파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수습에 부심한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25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들이 먼저 이 제도를 이해하고 국민 설득에도 적극 나서라'고 주문할 정도다. 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일부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자칫 안티 국민연금 정서가 확산될 경우 국민연금 납부거부 등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분배와 복지에 대한 요구가 높은 상황에서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인 국민연금 제도가 흔들릴 경우 연금정책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점도 제도개선을 서두르는 이유다. ◆ '국민연금의 비밀' 이번 국민연금 파문은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국민연금 모순점을 지적한 '국민연금의 비밀'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촉발됐다. 이 네티즌의 주장은 일부 타당성도 있지만 상당 부분이 '사회보험'으로서의 국민연금, 즉 국민노후소득보장과 소득재분배라는 대원칙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됐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비밀'이 제기한 문제점은 모두 8가지로 주로 수급권 제한이나 까다로운 수급조건을 문제삼고 있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가 각각 국민연금에 가입해 노후에 연금을 받다가 한 사람이 죽으면 그 배우자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노령연금을 타든지 배우자의 유족연금을 타든지 많은 쪽을 선택해 받도록 돼 있는 조항이 국민이 낸 보험료를 '꿀꺽'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남편이 사망해 산재보험에서 유족급여를 받을 경우 국민연금에서 지급되는 유족연금의 절반을 깎고 60세가 넘어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이 연간 5백만원 이상 소득이 있으면 연금액수를 10∼50% 깎는 규정들에도 반발하고 있다. '소득상한제'도 '안티'측이 제기하고 있는 주된 쟁점이다. ◆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 정부가 적극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이번 안티 국민연금 파동은 정부가 추진 중인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정과 맞물려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마당에 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이 제기되는 것은 정부로서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태 전개다. 정부는 이미 연금 납부율을 9%에서 15.9%로 높이고 수급률(소득대체율)을 60%에서 단계적으로 50%로 내리는 연금법 개정안을 확정해 오는 17대 국회에 제출키로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티 연금운동이 확산돼 나간다면 연금구조 개혁은 심각한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한 최근의 정부 조치도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2047년이 되면 연금 재정이 완전 바닥난다는 상황에서 일시적인 증시부양을 위해 연금을 투입하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안티 연금운동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 연금 개혁 시급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고 더 내고 덜 받는 구조개혁도 시급하다는 인식의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이 더욱 긴요해졌다. 빈곤사회연대의 오건호 정책팀장은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사보험이 가지지 않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저소득층에 꼭 필요한 제도"라며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되 제도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국민연금은 노령인구 사회로 진입하는 상황에서 노후빈곤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복지제도"라며 "다만 국민연금이 정부 편리대로 운영되고 정부 쌈짓돈으로 운영되는게 아니냐는 오해부터 불식시킨 뒤 미비점을 서둘러 고쳐 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자영업자 소득파악 등 연금설계의 기초를 확충하는 작업 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본격적인 연금지급 시기가 도래하기도 전에 국민연금 제도는 중대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